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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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월) 고전5장_존재이유와 거룩한 사귐

  • 느헤미야강
  •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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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5_존재 이유와 거룩한 사귐

 

1장부터 4장까지에서 고린도 교회를 가장 심각하게 흔들고 있던 분열의 문제를 다룬 다음,

바울 사도는 5장과 6장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음행 문제를 다룹니다.

당시 고린도는 상업과 무역으로 인해 부유하고 번성한 항구 도시였는데,

도덕적인 타락으로도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나서도

과거의 생활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먼저 고린도 교인들이 행하고 있던 음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 하면서

이것이 교만과 관련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자기 아버지의 아내”(1)은 계모를 의미합니다.

교인들 중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계모와 동거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교인들은 그런 행동을 통탄하고”(2) 징계하지 않고 그대로 묵인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이 바로 그들의 영적 교만의 증거라고 지적합니다.

 

바울 사도 자신은 이미 음행 하는 그 사람을 심판 했다고 하면서

그를 공동체로부터 내보내라고 말합니다(3-4).

사탄에게 넘겨주라는 말은 믿음의 공동체로부터

사탄이 영역인 세상으로 내보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그의 영혼과 교회에 유익한 일입니다.

만약 그가 세상에서 죄 가운데 살다가

결국 그 비참함을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면,

그의 영혼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회에 남아서 계속 다른 사람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거룩한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5-6).

 

바울은 여기서 누룩과 반죽을 비유로 사용합니다(6-8).

새 반죽이 되기 위해서는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워야 합니다.

유월절 음식을 준비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묵은 누룩을 내다 버렸습니다.

여기서 누룩은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을 의미합니다.

혹은 윤리관과 가치관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밀가루 반죽이라면 음행은 치워 버려야 할 묵은 누룩”(7)입니다.

옛 가치관과 윤리관이 교회 안에서 작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음행과 같은 묵은 누룩은 모두 치워 버려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여러분은 누룩이 들지 않은 사람들입니다”(7)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셔서 묵은 누룩을 없애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죄를 내버리고 성실과 진실이라는

새로운 누룩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8).

 

바울은 전에도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를 써서

음행하는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고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9).

그만큼 음행의 문제는 고린도 시의 뿌리 깊은 죄였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음행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죄를 행하는 사람들과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은 이 세상에서 도피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10).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부끄럼 없이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믿음의 형제 자매로서의 사귐을 중단하라는 뜻입니다(11).

바울 사도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행하는 일에 대해

심판관으로 행세할 마음이 없다고 말합니다.

다만, 믿음의 공동체 안에 그런 악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 없게 하라고 권면합니다(12-13).

 

묵상:

사귐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노니아는 단지 통성명을 하고

밥 한끼 먹는 정도의 교제가 아닙니다.

코이노니아는 같은 영으로, 같은 정신으로,

같은 믿음 안에서 삶의 애환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서로에게 활짝 열고 자신의 연약함과 부정함을 내어 놓고

서로 품어주고 기도해 주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런 사귐 가운데서 성령께서는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렇기에 코이노니아의 사귐이 이루어지면

교회가 거룩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이와 같은 깊은 사귐에 있습니다.

이 사귐을 통해 우리는 영혼 깊은 안식을 맛볼 수 있고,

서로 진실되게 연합되어 몸을 이룰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바울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죄악을 즐기는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용서 받은 죄인들의 모임입니다.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죄를 고백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기를 소망하며 서로 격려합니다.

교회는 그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렇기에 변화되기를 거부하는 죄인혹은 변화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죄인

혹은 자신이 죄인인지도 모르는 죄인은 교회의 사귐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죄가 크냐 가벼우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죄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가 문제입니다.

이렇게 교회의 사귐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교회가 거룩성을 지켜야만 교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모든 죄인을 회개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 존재 이유를 지키기 위해 교회는 먼저 거룩한 사귐을 이루도록 힘써야 합니다.


    • 이형원전도사 19-06-11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5:6)"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게 된다. 이것은 안일하게 대처했던 악한 생각 혹은 행동 혹은 공동체 안에
      잘못된 모습 하나가 결국 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교회 안에 음행을 저지르는 자를 용납하지 말고 그 공동체에서 쫓아내라고 표현한다.
      그 한 사람을 용납함으로 교회 안에 이러한 죄가 용인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교회  공동체 뿐 아니라 나의 모습 가운데에도 이러할 때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정도는 괜찮겠지 생각하는 그 하나의 죄가 결국 나의 올무가 되고 그것 때문에 자유함을 잃고
      때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치기도 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작은 것 하나부터 완전하게 내 안에서 도려내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내 안에 있는 인간적인 욕심, 탐욕, 정욕, 음란한 모든 것들을 내려 놓기를 원한다.
      이러한 것들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자유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깨워 기도해야 한다.
      언제나 작은 누룩 하나가 전체에 퍼진다는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작은 것 하나도
      허용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이루어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 김성민목사 19-06-11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고전5:7

      나의 허물과 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니 옛 누룩과 같은 죄악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죄의 족쇄에 묵여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면서도 왜 여전히 우리는 죄에 무너지는 것일까. 믿음으로 구원은 받았는데 여전히 죄에 얽매여 자유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것은 마치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와 다시 아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돼지 우리에서 먹고자던 옷을 입고 지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죄악의 옷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 정말 지긋지긋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죄에서 자유를 얻게함은 주의 보혈밖에 없다는 찬양을 매일 부르지만 정작 예수님의 보혈을 고백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루에 몇번이나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하루에 단 한번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적도 있다. 그러니 죄에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하루에 7번씩 예수님을 내 입술로 부르려고 한다. 그렇게 조금씩 예수님을 부르는 횟수를 늘려가고 내가 깨어 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언제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날이 오게되면 나는 언제나 예수님과 동행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 날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수님의 도우심을 받아 살아가는 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