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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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목) 고후 1장_고난가운데 만나주시는 하나님

  • 느헤미야강
  •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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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여러 편의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 중에 두 개만 우리에게 남겨져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써 보낸 후 또 다시 편지를 써야 할 상황이 생겼습니다.

바울은 먼저 당시 편지 양식에 따라 자신과 디모데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1) 써 보내는 편지임을 밝힙니다.

바울의 다른 편지도 마찬가지이지만,

그의 편지는 그 지역에 흩어져 있던 여러 교회에서 돌려 가며 읽도록 의도되었습니다.

이어서 사도는 그리스식 인사(“은혜”)와 히브리식 인사(“평화”)를 결합시켜

축복의 인사를 보냅니다(2).

 

바울 사도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수신자들에 대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3-7).

바울은 하나님이 위로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3절부터 7절까지 위로라는 말이 10번이나 등장합니다.

환난이라는 단어도 3번이나 사용됩니다.

하나님은 온갖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이 당하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 고난 가운데서 위로의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십니다(5).

이로써 바울은 자신이 당하는 환난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임을 암시합니다.

또한 그가 하나님에게서 받는 위로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위로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로로써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위로하려고 이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6).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고난에 동참하는 것과 같이위로에도 동참하고 있음”(7)에 대해 칭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주된 관심이 환난에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이 많은 환난을 겪고 있다는 이유로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라는 사람이 그렇게 고난을 많이 받을 수는 없으며,

그것은 그가 사도가 아니며 믿음에 결함이 있다는 증거라고 바울을 공격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먼저 자신이 당하는 환난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환난은 믿음이 약하다는 증거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입니다.

 

8절부터 바울은 본론을 시작합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극심한 환난을 당했습니다(8).

살 희망도 잃었고 이미 죽은 몸이라고 여길 정도였습니다(9).

하지만 그로 인해 그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게”(9)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위험에서 그를 건져 주셨고, 지금도 건져 주십니다(10).

그렇기에 앞으로도 건져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서 사도는 그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합니다(11).

 

12절부터 바울은 자신을 변호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처신할 때에, 특히 여러분을 상대로 처신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행하고, 세상의 지혜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다”(12)는 것이 그의 변호의 핵심입니다.

사도는 지금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마지막 날에는 그들이 자신의 진심을 알고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말합니다(13-14).

고린도 교인들 중에 바울을 오해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가 변경한 데 있습니다(15-16).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그것을 바울이 변덕을 부린 것으로

혹은 속셈을 감추고 거짓말 한 것으로 오해했습니다(17).

바울은 특별히 정직하지 않다는 비판에 크게 상처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과 예수님은 두 말 하는 분들이 아니며

따라서 자신도 오직 한 가지 마음으로만 말하고 행동한다고 고백합니다(18-22).

바울은 그의 방문 계획이 변경된 것은 여러분을 아끼기 때문”(23)이라고 말합니다.

 

묵상:

예수를 믿어도 삶은 여전히 힘겨울 때가 많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인생의 모든 문제와 고난, 삶의 무게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도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셨고,

바울도 살 소망을 잃어버릴 정도까지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예수 믿는 삶의 축복은, 여전히 내 삶에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지만,

더 이상 그 무거운 짐을 나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지치고 쓰러질 때마다

손 잡아주시고 위로해 주신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다 당해야 하는 고난도 있고,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자초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그 때 어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됩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피하지 않습니다.

고난 안에 보화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두려워할 것은 오히려 평안과 번영입니다.

그것은 필경 우리의 믿음을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고난을 기뻐하며 고난 중에 감사하는 믿음을 구합니다

    • 김성민목사 19-06-21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고전14:39-40

      성령의 역사가 교회 안에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없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체험을 자랑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마치 자신들을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의 고유한 특성중 하나인 교만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무질서한 상태가 되었다. 바울은 그러한 고린도교회에 하나님의 질서를 설명하거 있다.

      현대 교회에서도 일명 은사자들의 모습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은 것은 신격화이다. 예언을 말하고 신유의 은사를 받은 은사자들이 거의 그러한 모습으로 변질되어간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안전장치를 마련해 주셨음에도불구하고 한번 엇나간 마음은 좀처럼 회복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은사에 대하여 금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오히려 은사를 장려한다. 그러나 품위와 질서를 강조한다. 즉 나만 옳은 것이 아니라 서로 모두가 옳고, 모두가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합리적인 의심을 해야하며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은사자의 모습임을 기억해야 한다.
    • 이형원전도사 19-06-23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1:5)"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다시 한 번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고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는 복음을 위하여 많은 고난을 겪게 되었고 이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에게 이러한 고난은 복음을 전하는 열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이러한 고난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위로가 더욱 넘친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게된다.

      고난은 어려움이다. 그리고 누구나 이러한 어려움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님을 위하여 받는 고난은 우리에게 기쁨일 될 수 있는 것은 그 고난 가운데 위로하시고
      역사하시고 그 고난을 이기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인 줄로 믿는다.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고난 중에 있다할지라도 그것이 나의
      잘못이나 욕심이 아닌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것이 곧 나에게 영광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마음을 갖고 고난 중에도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