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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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화) 고후5장_믿는 다는 것은
- 느헤미야강
- 2019-06-25
- 475 회
- 2 건
고후 5장-믿는다는 것은
앞에서 “보이지 않는 것” 즉 “영원한 것”(4:18)에 대해 언급한 바울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소망을 밝힙니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1절)은
우리의 육신적인 생명을 의미하기도 하고 물질 세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육신과 물질 세계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일부입니다.
지금 우리는 육신과 물질 세계만을 보고 있지만,
마지막 날이 되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차원으로 통합될 것입니다(2-4절).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것은 물질 세계가 영원한 나라에 “삼켜지는”(4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그 세상이 있음을 알려 주셨고 또한 경험하게 하십니다(5절).
이러한 믿음과 소망이 있기에 바울은”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6절)라고 고백합니다.
육신 가운데 살고 있는 동안에는 “주님을 떠나”(6절) 사는 것입니다.
물론 영적으로는 주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완전한 동거는 아닙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에야 우리는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처럼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7절)라고 말합니다.
육신과 물질이 아니라 영혼과 하나님 나라가 그에게는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는 마음이 든든합니다”(8절)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그가 겪고 있던 그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염려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8절)라고 말할 정도로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이 분명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육신의 목숨이 살아 있느냐 죽어 있느냐가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에 있습니다(9-10절).
11절부터 바울 사도는 다시금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의 관계 문제에 대해 말합니다.
2장 12절부터 5장 10절까지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순수하고 진실하게 살고 있는지를 밝혔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의 진심을 알아 주기를 바랍니다(11-12절).
그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위해 살아 왔고 또한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13-14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우리도 그리스도를 위해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15절).
바울 사도는 그 마음으로 살아 왔고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헌신해 온 것입니다.
그는 육신과 물질이 전부가 아님을 알기에
“아무도 육신의 잣대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16절)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인들 중에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은
그의 육신적이고 물리적인 환경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자신도 과거에는 예수님을 “육신의 잣대로” 알았습니다.
그랬기에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는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습니다.
육신과 물질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으며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17절)라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참되게 믿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18절).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 관계를 고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셔서 인류의 죄를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19절).
그것이 복음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 복음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 하라고 권고합니다(20절).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믿는다는 것은 육신과 물질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영원한 차원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육신적인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고,
우리 모두의 존재가 변화하고, 시간이 영원에 삼켜지는 때가 있다는 뜻입니다.
모태에서의 9개월의 인생보다 태어난 후의 90년 인생이 더 중요하듯,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 오는 세상에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 세상을 알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그 세상을 보장해 주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기에 그분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마음 든든합니다.
오늘도, 눈을 감고 조용히 하나님 나라를 묵상합니다.
그분의 영원을 생각합니다.
나의 존재가 그 차원에 삼켜지고 변모될 것을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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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6-26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예수님께서 모든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 그가 죽으심은 살아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하게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옛사람, 죄의 사슬에 묶여있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두 죽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새사람으로 거듭났다. 더 이상 죄가 우리 앞에 있지 않고 오직 복음이 우리 앞에 있어 이 말씀을 많은 이들에게 전할 것을 부탁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화목하고 이 기쁨의 소식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하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다. -
- 이형원전도사 19-06-28
-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된다고 오늘의 말씀은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그 앞에서 각 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어찌보면 두려운 말씀이다. 내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과연 나는 어떠한 판단을 받게 될 것인가?
선을 행하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악도 내 안에 있는 것을 볼 때에 더욱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므로 내가 더더욱 의지할 것은 주님 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된다. 나의 모습 이대로는 결코 그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좋은 것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시고 그 분의 뜻대로 사용하여 주실 때 비로소 주님 앞에
조금은 덜 부끄러운 마음으로 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의인이 아니다. 선한 자도 아니다. 다만 의인이라고 또한 선하게 살 수 있다고 인정해 주시는
그분의 은혜 안에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한다.
그 은혜 안에 거하며 언제나 주님을 위하여 또한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