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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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월) 빌3장_기쁨의 이유와 원천

  • 느헤미야강
  •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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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편지를 마무리 지으면서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1)라고 권면합니다.

그는 이미 앞에서 기뻐하라고 권한 바 있습니다(2:18). 그것을 거듭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강조하는 것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안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전체 안에서 기쁨이라는 단어를 열 다섯 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투옥되어 있는 상황에서 쓴 편지임을 고려할 때 이것은 아주 특별한 현상입니다.

여기서 주 안에서라는 조건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쁨의 이유와 기쁨의 원천을 주님 안에서 발견 해야만

환경과 조건에 상관 없이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어서 그는 개들을 조심하십시오”(2)라고 경고합니다.

당시에 개는 부도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유 하던 말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찾아 다니면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던 사람들을 생각하고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진정한 할례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며,

육신을 의지하지 않는 우리들이야말로, 참으로 할례 받은 사람입니다”(3)라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고백으로 넘어갑니다.

할례를 요구하는 사람들처럼 인간적인 조건을 자랑하자면

자신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4).

그는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았고, 사울 왕을 배출한 베냐민 지파 출신이며,

이스라엘의 신앙과 전통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정통했고,

율법에 대한 열성이 탁월하여 교회를 박해 하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5-6).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그 모든 것이 자랑거리였고

또한 자신의 자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그는 그 모든 것이 자랑거리가 아니며

자산이 아니라 부채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위해

그는 다른 모든 것을 똥 오줌처럼 여겼습니다(7-8).

 

그런 전환의 경험 이후에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 받는”(9) 것을

목표로 두고 살아 왔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 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믿음 안에서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9).

그러기에 매일 그가 추구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10)입니다.

그렇게 할 때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11)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토록 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궁극적인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처럼 부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사도는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12)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당시에 그렇게 말하며 다니는 전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이미 다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미래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또한 앞으로 완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미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구원파적 교리도 문제이고,

현재의 구원을 부정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미 주어진 구원에 감사하면서 그 구원의 완성을 위해 노력합니다(13-14).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성숙한 사람”(15). 어떤 단계에 이르렀든지

그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아 계속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16).

 

이런 점에서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을 본 받으라고 권합니다(17).

자신처럼 그리스도 예수를 알고 그 부활의 능력을 깨달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 하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18)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을 생각합니다”(19).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은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20)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20).

그분이 오시면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21).

그런 믿음이 있다면 이 땅에서 바울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묵상:

죽음의 문턱에 당도 했다가 살아난 사람들 중에는

삶의 태도에 있어서 완전히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문제 앞에 서고 보니 현실이 달라 보였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중요해 보였던 것이 중요하지 않게 보였고,

전에는 의미 있어 보였던 것이 의미를 잃습니다.

죽음 앞에 서는 것이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넘어선 분이요 죽음을 정복한 분입니다.

그분은 영원한 생명의 주인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을 제대로 알고 믿는다면, 세상이 달라 보이게 마련입니다.

인생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질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전환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이 세상에서는 그 무엇에도 붙들리지 않는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을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살았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예수 앞에 섭니다.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그 영원하고 절대적인 나라를 보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오늘 하루 나의 삶이 그 나라를 향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김성민목사 19-07-23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3:8-9

      사도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그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의 모든 생을 헌신했다. 그는 세상적 가치로 말하는 금수저 다시말해 모든 것을 갖춘 엘리트였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만 자랑하고 있다. 사도바울이 오직 예수님만 외치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그의 목전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까지도 세상의 가치를 따라가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는 그 사실을 잊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진짜 만나면 오직 예수님만 자랑하며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만사를 제쳐두고서라도 예수님 만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