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7.25(목) 골2장_예수로 충분하다
- 느헤미야강
- 2019-07-25
- 489 회
- 1 건
골 2장_ 예수로 충분하다!
골로새는 지금의 터키 반도 서쪽 끝에 있는 에베소와 라오디게아에 인접한 도시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세 도시에 사는 신도들의 믿음을 위해 많은 애를 쓰고 있습니다(1절).
그 이유는 그들 중에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3절)는 사실을
망각하고 “교묘한 말로”(4절) 그들을 속이는 사람들에게 넘어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소식이 그에게는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5절).
그렇기에 바울 사도는 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라고 권면합니다(6-7절).
당시에 골로새 교회와 인근 도시의 교회들을 혼란시키고 있던 사람들은 두 종류였습니다.
하나는 당시 그리스-로마 종교와 혼합된 가르침을 전파하던 이방인들이고,
다른 하나는 율법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던 유대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했던 요점은 “그리스도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신전에 가서 제사도 드려야 하고 점도 쳐야 하며
여러 가지 규정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은 할례를 받고 여러 가지 절기와 율법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로 충분하다!”는 주장을 폅니다.
3절에서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라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고, 9절에서도
“그리스도 안에 온갖 충만한 신성이 몸이 되어 머물고 계십니다”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분을 믿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입니다(10절).
다른 무엇으로 보완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에서 뿐 아니라(12-13절)
과거에 얽매어 있던 모든 미신으로부터도(14-15절) 구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는 더이상 과거의 습관을 따라 율법 규정이나
미신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16-18절, 20-23절).
우리는 모든 것 위에 계시며 또한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들(19절)이기 떄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붙어 있으면 그분에게서 모든 것을 공급받아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나는”(19절) 은총을 경험하게 됩니다.
묵상:
오늘 우리 중에도 그리스도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분을 예배하며 살고 있지만,
삶의 여정에서 위기를 만나면 점쟁이를 찾고 과거의 미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혹은 “이런 것쯤이야 하나님께서 관심하시겠나?”라고 생각합니다.
영원한 구원의 문제는 그리스도께서 해결해 주시지만,
일상의 자잘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우주적인 문제와 영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까지도 그리스도 안에 그 해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영원의 문제이든 찰나의 문제이든, 거대한 문제이든 하찮은 문제이든,
예수 그리스도는 삶의 모든 영역에 주인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 그리스도의 주권을 선포하며 기도 드립니다.
“주님, 당신은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내 하루 삶의 주인이십니다.
나를 온전히 다스리소서!”
- 이전글 7.26(금) 골3장_하늘에 속한 사람 19.07.26
- 다음글 7.24(수) 골1장_예수 그리스도라는 비밀 19.07.24
-
- 김성민목사 19-07-25
-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2:8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 똑똑한 지식인으로 대우받고 존경 받는다. 반면에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고 근거가 없은 주장은 저급하고 거짓말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이성적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합리적 사고를 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신앙인들에게도 이러한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나쁜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맹신하는 것이 위험한 것이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이러한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세상을 따라가는 것임을 강조한다. 사실 이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합리적인 의심은 부정과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예수님을 부정하게 되고 모든 사건들이 거짓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세상의 학문에 설득당하여 신앙을 잃어버리게 된다. 겉보기에는 얼마나 정확하고 이성적으로 보이는가.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세주라는 사실이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이것을 부정하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쏟아내는 것이 오히려 비합리적이지 않는가? 명백한 사실을 증명해 보이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을 것이다.
태양이 뜨겁게 이글거리는 한 낮에 태양이 어디 있느냐 따지고 든다면 단지 태양을 손으로 가르칠 뿐이다. 그리고 머리를 들고 바라보라고 말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것을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더 바보같은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살아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된다. 그분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분이다. 세상의 간교한 술수에 휘둘리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으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