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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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월) 약2장_믿음을 행함으로 이어져야
- 느헤미야강
-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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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2장_믿음은 행함으로 이어져야
야고보 사도는 이어서 “차별”에 대해 가르치는데
다른 주제에 비해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1-13절).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서 사람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하대하고 부자는 존대합니다.
유명한 사람 앞에서는 굽신거리고 자기보다 못하다 싶으면 무시합니다.
이것은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1절)를 믿는 사람에게 합당하지 않은 태도입니다.
그런데도 차별적인 말과 행동이
“여러분의 회당”(2절) 즉 믿는 사람들이
예배를 위해 모였을 때에도 자주 일어납니다(2-4절).
이것은 우리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망각한 행동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높이시고 부한 자를 낮추시며
연약한 자를 일으키시고 교만한 자를 꺾으시는 분입니다(5절).
또한 현세에서 악하게 사는 사람들은 주로 부자들입니다.
물질적인 부로 인해 하나님께 교만하고 사람에게 무례하게 행동합니다(6-7절).
성경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이 계명을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에게도 실천해야 합니다(8절).
하나님의 말씀은 취사선택할 대상이 아닙니다.
어느 한 계명을 지켰다고 하여 다른 계명을 소홀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9-11절).
그러므로 아무리 믿음이 좋다 해도
사람을 차별하면 율법을 범한 것이 되고 심판에 직면하게 됩니다(12절).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13절).
이어서 사도는 믿음과 행함에 대한 가르침으로 넘어갑니다.
진정한 믿음은 그 사람을 변화시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원리인데, 실제로는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그에 합당한 행동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런 믿음”(14절)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17절)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것은 믿음과 행함이 별개인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18절).
사도는 여기서 귀신의 믿음을 예로 듭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점으로만 본다면
귀신에게도 믿음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귀신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19절).
그렇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 받은 것은 하나밖에 없는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하나님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려 했기 때문입니다(21-23절).
창녀 라합이 의롭다 함을 얻은 것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25절).
이처럼 행함으로 이어지는 믿음이 진실한 믿음이요,
그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25절).
행함이 없는 믿음은 마치 영혼이 없는 몸처럼 죽은 것입니다(25절).
묵상:
믿음과 행함의 관계 문제는 지난 2천 년 동안 줄곧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원리적으로는 진정한 믿음은 참된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옳은데,
실제적으로는 믿음과 행함이 분리되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믿음이 먼저냐 혹은 행함이 먼저냐고 따져 묻습니다.
혹은 행함이 없어도 믿음만으로 구원 받을 수 있느냐고 질문하기도 합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나타났다 사라졌던 이단들은
이 둘을 분리시키고 어느 하나만을 강조했던 분파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행함만 강조했던 유대교에 반대하여 믿음을 강조했고,
마르틴 루터 역시 행함을 강조했던 천주교회에 반대하여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구원파 같은 이단들은 믿음만을 강조하여 행함을 무시하게 만들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진정한 믿음은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하고
삶의 변화는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나의 믿음을 돌아 봅니다.
그 믿음이 내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냈는지를 자문합니다.
나의 말과 행실에 믿음의 향기가 묻어나고 있는지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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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9-10
-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약2:1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마음에서 부터 시작된다. 마음에 누군가를 담고 그 사람을 미워한다면 차별은 시작된다. 어떤 사람은 아무 관심이 없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라고 고백하는 성도에게는 이말이 틀린 말이다. 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가족의 한 자녀를 관심이 없다고 해서 그대로 방치해 두어 죽음을 맞이 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그 부모는 도덕적인 비난을 받을 뿐만아니라 법적인 형벌도 받을 것이다. 한 교회 안에서 믿음 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로 구원빋??한 형제, 자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나의 형제요 자매요 가족이라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러니 교회 안에서 서로 돌보고 관심을 갖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가까운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교회가 그룹화 되어지고 극단적으로 파벌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것도 역시 차별의 결과이다. 성향, 취미, 성격 등등 세상의 조건으로 가깝거나 먼 사람을 구분해선 절대 안된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 교회안의 모든 사람을 선대해야 한다. 주님이 언제 어느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실지 모른다. 때로는 헐벗고, 굶주리고, 매맞고,
옥에 갇힌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실지 모른다. 우리는 그분을 모른척할 수 있겠는가??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그렇게 찾아오신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모든 이들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선대해야 할 것이다. 주님, 내가 마음으로 차별하고 모든 이들을 섬기지 못했다면 나의 완악한 마음을 고쳐주셔서 모든 이들을 주님을 섬기듯 섬기게 도와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