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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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수) 순종,십자가,영화롭게 함_요17;1-5

  • 느헤미야강
  • 20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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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의 본문은 제자들의 성결을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의 시작부분이다.

 

1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다스리는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의 자기선언이다.

원래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는 창조주 하나님에게 있다.

하지만 아들이신 주님에게 그러한 힘이 부여되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함이다.

, 아들이 속죄 제물이 되어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그것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가 언급된 것은

이미 골고다의 승리와 영광에 대한 선포를 말한다.

 

2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리스도께서 영생에 대해 정의하신 말씀이다.

영생은 곧 구원이다.

영생을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알다라는 동사가 중요한 단서이다.

안다는 것은 체험적인 지식을 포함해서

주님과 인격적으로 하나가 됨을 말한다.

영생과 안다는 것이 같은 의미로 쓰여졌다는 것은

지식으로 알 뿐 아니라 긴밀한 교제가운데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영생이라는 뜻이다.

주님이 영원하신 분이니,

주님과의 영원한 관계를 맺음으로

영원한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3

우리 주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다고 했다.

예수님이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고만 할 수 없다.

주님이시니 더 어려웠을 것 같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살았으니 더 어려웠을 거다.

마치 대학원생이 초등학교 교실에 앉아 교육받는 것 같았을 것이다.

주님이 자신을 쳐 하나님을 따랐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육신을 다스리셨고 세상과 맞섰다.

 

주님이라서 몸의 고통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주님도 배고프고, 피곤하고, 괴로워하셨다.

40일 금식하여 시장하셨고,

너무 피곤하여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주무셨고,

그리고 같은 제목으로 세 번이나 기도하셨다.

하지만 육신을 쳐 하나님께 복종하셨다.

주님이라서 해서 세상이 알아보고 존경한 것 아니다.

세상은 주님을 배척하였다.

더 나아가 사형을 언도해 버렸다.

하지만 주님은 항거하지 않았다.

묵묵히 당하셨다.

오직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은 이런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질문한다.

나는 능력이 부족해서 소원하게 영광을 드리는가?

나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당연히 똑같을 수는 없느나 닮아가는 것은 마땅하다.

자녀이고 제자이기 때문이다.

어디 크고 작은 가지고 영화로움을 판단하실까?

많고 적음도 관계없을 것이다.

달란트 비유가 그것을 보여준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매 맺으면 된다.

 

문제는 그것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 주신 능력으로 영생을 주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신 것처럼,

나도 나에게 주어진 달란트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마땅하다.

 

만약 오늘 그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정신으로 일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영광스럽게도 우리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맡기신 일을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