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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월) 성경, 믿음의 확신과 영적 성장의 기초_요20;24-31
- 느헤미야강
- 2020-03-16
- 402 회
- 1 건
2020.03.16. (월) 생명의 삶
성경, 믿음의 확신과 영적 성장의 기초
요한복음 20 : 24~31
오늘의 찬송
(새 545 통 344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1. 성경본문
최고의 신앙 고백자 도마 20:24~29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성경을 통해서 믿는 신앙 20:30~31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 본문해설
최고의 신앙 고백자(20;24-29)
기독교 역사에서 도마는 늘 의심많은 사람이라 불리면서 믿음이 작은 제자의 표상으로 취급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일 뿐입니다(24절).
도마는 어떤 사실을 볼 때 기본적으로 비판적인 관점에서 출발해 확실성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도저희 이해되지 않는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는 곧바로 최고의 신앙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겸손하면서도 진실되게 비판적인 도마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도 얼마든지 예수님을 믿고
최고의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도마가 한 신앙 고백은 무엇인가요?
신앙생활에서 겸손하면서도 정직한 의심을 갖는 것은 어떤 유익을 주나요?
성경을 통해서 믿는 신앙(20:30-31)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예수님 말씀을 직접 듣고 표적을 보고 그분을 믿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시대 이후 사람들은 예수님을 볼 수도,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책 곧 성경을 통해서 믿습니다. 요한이 제시하는 이 책(30절)은 요한복음서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신앙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그것도 책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이 예수님을 처음 믿게 하는 ‘전도’나
계속 잘 믿게 하는 ‘양육’이냐 하는 논쟁이 있지만,
두 가지 목적이 다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바르게 믿을 뿐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해 갑니다.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무엇인가요?
복음 전도와 개인의 믿음 성장에 성경을 어떤 역할을 하나요?
오늘의 기도
주님이 거듭하신 에고에도 다른 제자들의 분명한 증언에도 의심을 품었던 도마의
뒤늦은 믿음을 기꺼이 받아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봅니다.
생명을 얻게 하는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순전히 믿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입술로, 마음으로, 삶으로 고백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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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강 20-03-16
- 요 20; 24-31
도마는 주님께서 나타나실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빠진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이 있어서 하필 그 순간에 자리에 없었던 것 같다.
돌아와보니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주님을 만났다고 말한 것이다.
문제는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그들이 여전히
다락방에 숨어 지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부활한 주님을 보고서도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두려워하고 있던 것을 보며
도마는 이해하기 어려웠지 않았을까 싶다.
‘저들이 분명히 부활한 주님을 본 것일까?’
주님을 만났다고 하지만 전혀 변화가 없었음을 보아서 아닐까?
주님도 마찬가지이다.
‘부활한 주님께서는 왜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으시고
계속 은밀하게 계신 것일까?’
도마로서는 당연히 가질 의문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도마는 그 손의 못자국과 그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한 것 아닐까?
너무 알고 싶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불신앙이 아니라고 하고 싶다.
진실을 알고 싶은 열정은 아니었을까?
불신의 반대말은 믿음이다.
그러나 의문의 반대말은 해답과 확신dek.
그러므로 불신과 의문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불신은 말 그대로 믿지 않겠다는 의지가 전제된 개념으로
그것은 신앙 상 죄이다.
의문은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신앙적으로 죄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진리를 제대로 알고 싶은 열심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모르면서도 아는척하는게 더 문제일 수 있다.
도마는 어떻게 보면 믿음의 본을 보인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순수함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가져야 할 믿음에 대한 태도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여드레 후에 주님께서 나타나셨다.
그 때도 문들이 닫혀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다행히도 그 순간 도마가 있었다.
주님은 다짜고짜로 마치 도마가 말한 것을 들은 것처럼
그대로 말씀하셨다.
그 때 도마는 느닷없이 주님에게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다.
사실 그는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 보고 그 말을 해야 옳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만나자 마자 그 말을 외쳤다.
더 이상 증거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인 주님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도마는 이러한 믿음의 샘플이 되었다.
주님을 만나자 마자 그의 인격 안에서 믿음이 들어섰다.
오르지 주께 대한 뜨거운 열정의 결실이다.
그러고 보면 믿음은 덮어 놓고 믿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맹신하는 것은 믿음도 아니다.
이성과 지성으로도 알려고 애를 써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믿음을 확인해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들만큼 믿음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서는 열심히 연구하고 살폈다.
도마는 의심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의문으로 믿음이 거듭났다.
불신과 의문의 중간단계가 의심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의 분수령이 연구요, 공부요, 열심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의심은 불신으로 갈 확률이 높아지지만,
노력하면 의심은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불신의 끝은 영 벌이지만, 의문의 끝은 영생이다.
의문이 풀리면 풀릴수록, 깨달아지면 깨달아질수록
진리의 빛으로 더 다가갈 수 있다.
우리의 믿음의 출발점은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을 때’ 이다.
믿음은 자라고 성장한다.
바울이 말한대로 주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나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