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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있는 삶의 비결 - 잠언 13;12-25
- 새생명
- 2015-11-11
- 1,309 회
- 1 건
잠언 13장
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
14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15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사악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16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거니와 미려한 자는 자기의 미려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17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18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받는 자는 존영을 받느니라
19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
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21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22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23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함으로 양식이 많아지거니와 불의로 말미암아 가산을 탕진하는 자가 있느니라
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25 의인은 포식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리느니라
잠언 13장 역시 12장에서 언급한 동일한 주제, 즉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에 대하여, 게으른 자와 부지런한 자가 거두는 열매,
그리고 말에 대한 교훈 등을 말하고 있다.
13장을 “관계”라는 측면에서 묵상한다면 우리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 지혜로운 삶과 어리석은 삶은 우리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우리가 의인과 함께 하면 거짓에서 떠나게 되지만 악인과 함께 하면 부끄러움에 이르게 되고(13:11),
교만한 자와 함께 하면 다툼을 피할 수 없지만 지혜로운 자와 함께 하면 교훈의 말을 듣게 된다(13:11).
특별히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는다(11:20).
이처럼 우리가 “어떤 사람과 함께하느냐”는 것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동행 하는 동안에는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 가운데 살 때에는 불의를 행하였다.
베드로는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과 고모라 성에 가서 거한 롯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며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벧후2:8)”
동일한 예를 여호수아와 발람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여호수아는 모세와 함께 함으로 그가 죽은 후에 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지만,
뛰어난 능력을 지녔던 선지자 발람은 모압 사람들과 함께 하므로 망하였다.
이처럼 우리는 누구와 함께 하느냐는 것은 우리의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함께 해야 할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둘째, “누구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도 ?獵?
본문은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13:14)”고 말씀 해 주고 있다.
즉 지혜자의 말을 들을 때, 생명에 이른다는 의미다. 이런 훈계의 말씀은 잠언 여러 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12:5,6에서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고 말하고 있고, 10:11에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매일 많은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말을 들으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혜로운 삶을 살기 원한다면 분별심을 가지고 들어야할 말을 가려서 들어야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로부터 믿음의 말을 듣고 산다면 우리는 생명에 이르게 될 것이다.
셋째, 지혜로운 삶과 어리석은 삶은 우리가 “누구와 협력하느냐”에 의존 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받은 삶의 자원을 의의 집을 세우는 일에 사용할 수도 있고, 불의의 집을 세우는 일에 사용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공동체를 허락해 주심으로 그 공동체에 속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집을 짓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람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일에 협력하느냐에 따라 의의 집을 지을 수도 있고 불의의 집을 지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악한 무리와 함께 한다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삶의 자원은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불의의 집을 짓는 자원으로 사용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의로운 자들과 함께 한다면 우리의 삶의 자원은 의로운 집을 짓는데 사용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람들과 함께 하느냐는 것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집을 짓느냐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 언제나 분별심을 가지고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인지?
누구와 협력 할 것인지? 에 대하여 생각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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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 15-11-11
- 내 소망? 그분의 소망?
13: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소망이 더디 이루어질 때에 마음이 상하게 된다.
참 마음에 와 닿는 말이다.
그런데 마음이 상하게 되는 이유중의 하나가
나를 보면
소망의 때를 내가 정하고 기다리기때문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난 그런때가 많았다.
내가 작정기도하고, 내가 작정금식하고
그 기도의 때가 끝나면 하나님도 나의 소망을 이루어주셔야 한다는
치성을 드리면 감천한다는 차원에서의 소망이 인정하기는 싦ㅎ어도 내게 참 많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신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다.
내게도 소망이 많다.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것,
성도들을 더 사랑하고 말씀과 기도안에서 흔들림없이 세우는 것
서로 사랑하고 하나됨을 이루어 가는 것.
주일이라??목숨처럼 지켜내고
휴가철이면 가정가정마다 선교지로 향하는 일들이
우리안에서 일어나는 것 들이다.
그런데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길을 걷다보면 돌발변수들이 참 많다.
생각지 않게 아픔주고 절망마져 주는 이도 있고
뜻밖에 선물처럼 믿음이 하나 하나 자라며 서 가는 이들도 있다.
결국은 소망이 답압함은 더딤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여전히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하는 믿음의 문제요
그 안에서 인내를 배우고 낙심과 싸우며 강해지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는 것 같다.
마음 상하지 않도록
믿음을 구하며 참은 것만큼 큰 사랑도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소망때문에 내가 서운해보고
하나님의 뜻때문에 마음상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내 삶에 상함의 이유에 추가되었으면 좋겠다.
13: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
다윗은 그의 유언에서 아들 솔로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형통한 삶이 되려거는
말씀과 계명을 지키며 살라는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낮은 자리, 고통과 절망의 자리에 있었던 다윗,
가장 높고 높은 부귀와 명예의 자리에도 올랐던 다윗,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회를 만들어 갔던 다윗,
가장 평안할때에 죄악의 깊은 구렁에도 빠져 보았던 다윗,
그가 내린 결론은 내 삶의 위치와 소유의 많고 적음
어떤 힘이 인생을 형통케 하는 것아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인생이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상이지 싶다.
13:22.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아주 가까운 일가의 이야기이다.
시골이라야 큰 동네는 아니나 온통 산으로 둘러쌓인 곳이니
산을 재산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큰 부자인 셈이다.
큰 댁이 시골 웬만한 산이란 산은 다 소유했던적이 있다.
지금? 당연히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가에 역시 수 백억 재산가가 있었다.
자식도 다 멋지게 유학보내고 공부시켜 의사, 박사 되었다.
그런데 애쓰고 수고해서 벌지 않아도 평생 먹고 사는게 문제없으니
자녀들이 허랑방탕함은 예사였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잘 못 키우셨다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다.
결코 부자가 아니었다.
이 말이 참 가슴에 남는다.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재물의 주권이 소유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여전히 내 속에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지금 재물이 주어지면 잘 사용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분명한것은 하나님께도 기쁨이 되는 일을 위해 사용할거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내가 더 기쁜일에 더 많이 사용할 거라는 것은 분명하다.
뒤 바뀔 수 있도록 오늘 나를 만들어가는 삶,
오늘 그것을 연습하도록 크고 작은 물질도 주시는 것 아닐까 싶다.
13: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오늘 새벽말씀처럼 암몬의 실수와 죄악에
아무런 책망의 말도 못하고 분노하기만 한 다윗앞에서
바른 책망의 사람이 되려면
내가 먼저 바름으로 무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내가 먼저 악행을 저질렀으니
그것 보고 배우는 것 당연한 것이지 싶다.
아파도, 힘들어도 바름을 위해
기꺼이 책망할 수 있는 삶 되도록
오늘도 나를 경책하는 삶을 살도록 하시는 은혜를 경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