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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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금)언약을 깨뜨린 백성, 언약을 회복하는 지도자(신9 : 9~21)

  • seanho
  •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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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4 ()

 

언약을 깨뜨린 백성, 언약을 회복하는 지도자

 

 

신명기 9 : 9~21

 

 

오늘의 찬송

 

(352 390 십자가 군병들아)

 

 

율법 수여와 금송아지 우상 9:9~15

 

 

9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10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돌판의 글은 하나님이 손으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의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

11사십 주 사십 야를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돌판 곧 언약의 두 돌판을 주시고

12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

13여호와께서 또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14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고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시기로

15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에는 불이 붙었고 언약의 두 돌판은 내 두 손에 있었느니라

 

   

두 돌판을 깨뜨림 9:16~21

 

16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도를 빨리 떠났기로

17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으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노라

18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여 크게 죄를 지었음이라

19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20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21너희의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

 

 

본문해설

 

 

두 돌판을 깨뜨림 9:16~21

하나님나라 시민은 하나님 법을 알고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에 앞서 시내산에서

그분 백성이 지킬 율법을 수여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산에 올라40일간 금식하며 불 가운데서 거룩한 율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광스러운 순간에 산 아래에 있던 아론과 백성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그 앞에 절하며 광란의 축제를 벌였습니다.(32:1-6)

가장 거룩해야 할 중요한 순간에 죄에 틈을 내주고 타락한 것입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언약의 핵심인 십계명의 첫 번째, 두 번째 계명을 어겼습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신과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두면 언약 백성의 자격을 상실합니다.

-

모세가 산 위에서 율법을 받는 동안 산 아래 백성은 무엇을 했나요?

경건하고 거룩해야 할 순간에 죄가 틈타지 않도록 어떻게 방비해야 할까요?

 

 

율법 수여와 금송아지 우상 9:9~15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은 언약의 파기를 의미합니다.

모세는 금송아지 우상과 그 앞에서 춤추는 백성을 보고 언약의 증표인 두 돌판을 던져 깨뜨렸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죄에 대해 거룩한 분노를 표출한 것입니다.

그는 백성의 죄를 애통해하여 다시40일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금식했습니다.

모든 백성이 멸망당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14,19).

모세는 하나님의 심정대로 백성을 향해 진노한 한편, 하나님께 백성의 죄악을 사해 주시길 간구했습니다.

모세는 그 일을 회상하며여호와께서 그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19),

그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20)라고 전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진실한 기도는 파기된 언약을 회복시킵니다.

-

모세는 아론과 백성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보고 어떻게 반응했나요?

하나님 말씀을 떠나 죄를 범했을 때 어떤 결단과 조치가 필요할까요?

    • seanho 20-04-24
      묵상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받은 날
      산 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진노케 한 사건을 설명해 주고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아니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 모세가 40일 동안 부재하자 두려운 마음에 아론에게
      우리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아론은 그들은 요구에
      나일강에서 애굽사람들이 만들어 섬기던 대로 소 우상을 만들었다.
      그들이 우상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두려움 때문이었다.
      막막한 광야의 현실에서 지도자가, 인도자가 없다는 두려움이 우상을 만들게 했다.
      그 순간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백성이 지키고 살면 복을 누릴 수 있는 계명을 주시고 계셨는데.
      이 백성을 영원히 책임지시고, 인도하실 하나나님은 여전히 계셨지만
      현실에 두려움이 그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게하고, 현실에 막막함이 그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지 못하게 했다.
      지금 나의 상황이 그렇것 같다. 현실의 막막함이,
      현실의 두려움이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가려버리고 다른길을 바라보게 하지는 않는가?
      현실이 막막하고, 때때로 두려움이 찾아오지만 여전히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실력이 있기를.
    • 느헤미야강 20-04-24
      1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위기에 처했다.
      하나님과 주신 말씀을 따르지 않아서이다.
      금송아지 사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다가 한참을 내려오지 않자 금붙이를 가지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애굽에서 나오게하고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한 신이라 하고 섬겼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모세를 통해 의지한 까닭이다.
      눈앞에 모세는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심을 보지 못하면
      언제나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코로나19로 인해 두려워하고 염려하면서 내 안에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에 대한 신뢰가 있는가?
      그들이나 나나 똑 닮아 있다는 생각이다.

      한가지 더 드는 생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섬긴 행위가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따르고
      자신을 축복해주는 우상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변이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2
      하나님의 형상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인간이 임의로 만든 것에 대해
      16절에서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도를 떠났다고 표현한다.

      내가 하나님을 따라야 할 존재인데, 하나님이 나를 할 존재로 전락시킨 것이다.
      하나님을 언제나 눈에 보이는 가치로 만들면 늘 그렇다.
      하나님의 역사와 살아계심을 내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가치로 바꾸면 언제나 그렇다.

      3
      본문에는 이런 위기마다 하나님을 거역한 백성과 격노하시는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한 인물이 있다.
      바로 모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목이 곧은 백성이라 하시고 그들 모두를 멸하시고 모세만 남겨두려고 하신다(14절).

      그때 모세는 시내산에 머물지 않고 돌이켜 산을 내려온다(15절).
      모세는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하는 돌판을 들고 있었다.

      모세의 선택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의 대가로 심판당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아니었다.

      모세는 십계명 두 돌판을 파괴하면서까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자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고 모세를 통해서 다시 하나님 나라를 세우겠다 하셨다.

      그럼에도 모세는 시내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백성들이 죄를 지은 현장으로 내려왔다.

      마치 예수님 모습과 같다.

      죄지은 인간이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진멸되어야 하는데
      심판의 대상이 아니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셨다.
      굳이 죄를 지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자가 되셨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시면서까지 말이다.

      모세가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심판받고 진멸되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나 사이의 중재자로 오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오늘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랐거나 거역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거역하려 할때가 많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이후에도 그렇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진노가 내 위에 임하지 않는 것은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지금도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중보 때문이다.

      오늘과 같이 어려운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이 땅을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자가 되어야 겠다.
      시내산에서 돌이켜 산 아래로 내려왔던 모세처럼,
      심판의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처럼,
      이 땅을 위해 나 역시 기도의 중보자로 살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중보기도하기.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사람도,
      믿음의 사람들안에서의 중재도 같이.
    • 야긴과보아스 20-04-24
      속히 <신9;12>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신9;12)


      하나님께서 깜짝 놀라고 다급한 모습이 ‘속히’를 통해 느껴진다.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

      이어지는 나의 궁금증은 ‘어떻게’ 이다.
      어떻게 스스로 부패하지?
      어떻게 그렇게 속히 떠날 수 있지?
      어떻게 변함없이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고 배신하지?

      하나님을 ‘속히’ 떠나고(12), ‘빨리’ 떠났다(16)고 하신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속히, 재빠르게 타락하고 부패하여 우상을 만드는 모습,
      영락없이 드러나는 죄의 속성이자 내모습이다.

      재빠른 타락과 부패를 보고 속히 내려가라 하신 하나님.

      네가 인도하여 낸 백성들이라고 책임 전가하는 것 같아도
      ‘속히’ 내려가라 하심은
      죄가 더 퍼지지 않고 여기에서 멈추었으면 하는
      하나님의 아프지만 깊은 속 마음을 느낀다.
      그게 아니면 ‘속히’ 내려가라 하지 않으셨을 것 같다.

      똑같은 ‘속히’, ‘빠름’이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다.
      백성들은 속히, 빠르게 타락과 부패에 물들고
      하나님은 속히, 빠르게 반응하여 용서의 길을
      은근히 찾고 싶어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을 다 멸하시고
      모세를 중심으로 다른 민족을 택하시겠다 하셨다.
      이에 모세는 언약의 돌판을 깨뜨리는 행동을 보였고(17),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로 섰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중보로 민족을 멸절하지 않으셨다.

      내가 이 민족 다 멸절시킬거야.
      너랑 다시 시작하고 싶어.
      그 말씀하실 때 모세는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린 것 같다.
      멸절이 아니라 멈추고 다시 세우고 싶어 하심을.
      그 상징적 행위가 십계명 두 돌판을 깨트린 것으로 읽혀진다.

      하나님의 두 돌판과 십계명.
      상호 계약에 의해 이루어진 쌍방계약.
      한쪽에서 깨트렸으니 이 십계명은 깨트림이 마땅하다.
      그게 모세가 깨트린 이유인 것 아닐까 싶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깨트린 것에 책망하심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서 모세는 다시 십계명 언약을 받으러 올라가는 것이지 싶다.
      관계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함을
      돌판을 깨트림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으로 묵상하게 하신다.


      오늘 내 안에 있는 금송아지 우상,
      세상의 가치와 눈에 보이는 욕심과 자기의의 우상들,
      깨트려져야 다시 관계를 회복할 있음을 발견했으니,

      무너진 백성들의 삶의 자리에
      코로나로 인해 두려움이라는 우상들앞에서
      모세같은 중보자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오늘 코로나19로 인해 깨어지고 있는 세상이다.
      내 안에 있는 금송아지, 두려움의 우상이
      코로나19보다도 더 작은 가루로 쪼개지고,
      가정에서 드리는 온라인 예배를 통해 가루를 빻은 시간이 되어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 Coramdeo 20-04-25
      오늘 본문중 12절말씀에 영어로 보면 they have turned away quickly 이라는 말이 나온다
      QUICKLY....
      하나님의 말씀에는 더디 반응하는데  타락하고 부패하는데는 어찌 저리 빠른지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주야를 금식하는 모세를 생각하면
      온 백성이 같이 기도해야함이 마땅할진대
      잠깐 모세가 눈에 보이지않자 재빠르게  우상을 만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나 또한 말씀묵상을 며칠만  거르게되면 목이 곧은 백성이 되게 된다
      심지어 떄로는  말씀묵상을 하는데도 여전히 내안에 두려움과 우상이 남아있다
      이러하기에 우리는 죄와더불어 피흘리기까지  싸워야되는것같다
      나 혼자가 아니라 승리하신 주님과 더불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세는 정말 위대한 지도자인것같다
      출애굽기 32장 7절부터14절을 읽으면서 모세의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스라엘백성들을 출애굽시켜 인도하는과정가운데 너무 힘들어서
      내가 이모든백성을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이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라며 여호와께 간구하였던 모세
      이스라엘백성들이 죄를 지을때마다 중보기도했던 모세
      그러나 나는  우리는 어떠한가
      지체를 위해서 영혼들을 위해서 얼마나 중보하고 있는가
      내가 구할것도 많은데 언제 다른사람을 위해서 중보할수있겠어라고 생각하지는 않은가
      교회에서 맡은 직분떄문에 중보를 하기는 해야되니까 대충하고있지는 않은가
      아주 오래전 한국에서 신앙생활했을때 중보기도를 하라고 하면 진짜 마음이 담기지않는 입술로서만 했었다
      그러나 연단의 시기를 지나는동안 중보기도할때 성령님꼐서 나의 마음에 진심을 조금씩 허락해주셨다
      나 또한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중보기도와 사랑의 빚을 진 지체이다
      우리모두 서로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빚을 갚기위해 중보하길 바란다

      모세처럼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모세의 마음을 백분의 일이라도 담고 중보할수있는 마음이 생기길 간절히 바란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과 같이 여호와께서  모세와 대면했기에
      모세가 훌륭한 중보자 지도자가 되었던것처럼
      우리도 날마다 주님께 나아가 주님의 음성을 듣게되면 모세의 심정으로 조금씩 변화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