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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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 (수) 율법에 얽매인 삶, 성령으로 자유로워진 삶 (로마서 7 : 1~6)

  • seanho
  • 20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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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5 ()

 

율법에 얽매인 삶, 성령으로 자유로워진 삶

로마서 7 : 1~6

 

오늘의 찬송

(272 330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율법으로부터의 해방 7:1~3

 

1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 영의 지배를 받는 삶 7:4~6

 

4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율법으로부터의 해방 7:1~3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그분의 거룩한 성품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율법이 악하다거나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율법이 인간을 지배하고 얽매였던 원인은 죄입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담긴 율법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행하는 일마다 율법의 요구와는 정반대됩니다.

율법은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을 사망으로 이끄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지킬 능력이 없는 자에게 주어진 율법은 과격하게 표현하면 재앙 자체였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그의 영향에서 벗어나듯,

하나님은 율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모든 죄를 해결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바울은 율법 아래 있는 삶을 혼인 관계에 빗대어 어떻게 설명하나요?

율법에 매이는 삶과 율법에서 자유로운 삶은 무엇이 다를까요?

 

 

하나님 영의 지배를 받는 삶 7:4~6

 

모든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 조항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비난하셨습니다.

그들의 율법 준수가 올바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한 성도는 율법에 대해 죽은 자라고 말합니다.

더 이상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새로운 삶이 가능해졌는데,

곧 하나님의 영의 지배 아래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영이 살아난 성도는 하나님의 영의 지배 아래 살아갑니다.

겉모습이 아닌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해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할 때 사망을 위한 열매가 아닌

하나님을 위한 선한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을 위한 열매와 사망을 위한 열매는 각각 어떻게 맺게 되나요?

내가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해 맺은 삶의 열매는 무엇인가요?

    • 야긴과보아스 20-08-05
      신앙생활이 어려워지고 부담이 되며 마음에 기쁨이 사라질때가 있다.
      그 대부분은 내 안에 사랑대신 율법만 남았을때이다.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할 때 더 그렇다.
      율법은 의무와 책임을 가르쳐 준다.
      율법은 나에게 죄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율법을 지키면 평안을 얻고 안심이 되나 반대면 나를 죄인으로 정죄한다.
      또 내가 율법을 잘지키고 있다고 여기면 다른 사람을 쉽게 정죄하고 판단한다.
      종종 율법은 사람앞에 자신을 나타내는 도구가 된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했다.
      이렇게 기도하고, 금식하며, 십일조를 내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 나는 거룩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남픈 판단하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생활을 했다.
      이런 일은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있다.
      목사는 이래야 하고, 장로는, 성도는 이래야 한다.
      나만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판단한다.

      종종 내가 정한 기준에 따라 살다보니 내 스스로를 정죄하기도 하고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스스로 낙심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책임과 의무가 있어 어려워도 교회에는 나간다.
      그러니 그 안에 자유와 기쁨이 없다.

      본문에서 바울은 율법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선포한다.
      율법적 신앙도 이미 죽었다.
      이제는 십자가에서 나를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매일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교제하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주님 안에서 만족과 기쁨을 얻는 것이 사랑의 법으로 사는 것이다.
      더 이상 책임과 의무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받았으니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삶이어야 한다.
      사랑하면 희생할 수 있고 기꺼이 헌신할 수 있다.
      내 속에 있는 율법적인 신앙을 제거하고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의 훈련,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다양한 통로를 잘 활용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