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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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0 (목) 거룩한 삶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로마서12:1-8)

  • seanho
  • 202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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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0 ()


거룩한 삶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

 

로마서 12 : 1~8

 

오늘의 찬송

(212 347 겸손히 주를 섬길 때)

 

 

성도가 드릴 영적 예배 12:1~2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한 몸 안에 있는 다양한 은사 12:3~8

 

3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성도가 드릴 영적 예배 12:1~2

 

구원받은 성도는 신실한 예배자로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가 드릴 예배를 구약의 제사를 배경으로 설명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동물을 잡아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신약 시대에는 자기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것은 이 세대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곧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자기중심적 삶을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그분의 초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이 세대를 거슬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살아

내는 예배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합니다.

-

구원받은 성도는 어떤 예배를 드려야 하나요?

내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의 자리로 만들기 위해 힘쓸 것은 무엇인가요?

 

 

한 몸 안에 있는 다양한 은사 12:3~8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입니다.

또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는 지체입니다.

우리 몸의 여러 기관이 각각 그 역할을 조화롭게 해낼 때

우리 몸이 건강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그러합니다. 모든 성도에게 같은

사명과 역할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각기 다양한 사명과 은사를 주셔서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예언, 봉사, 가르침, 위로, 구제의 일은 은혜대로 받은은사를 따라 섬겨야 합니다.

이때 다른 사람이 지닌 은사를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게 선물로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알고 그 은사로 최선을 다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섬김의 원리입니다.

겸손과 존중의 마음으로 서로를 섬길 때 예수님의 몸 된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울 수 있습니다.

-

바울은 교회를 무엇에 비유해 설명하나요?

내게 주신 은사는 무엇이며, 이 은사로 어떻게 교회와 이웃을 섬길 수 있을까요?

    • seanho 20-08-20
      오늘 말씀에서는 성도가 드려야할 영적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1절 말씀을 보면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서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찾으시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 우리의 삶을 죄 많은 세상가운데 거룩하게 구별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삶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구약에서는 동물을 죽여 제사를 드렸는데, 이 말씀에서는 산 제물을 원하신다.
      산 제물은 무엇일까? 내가 십자가에서 온전히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삶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산 제물이 아닐까?
      그것이 진정으로 영적인 예배를 드리는 삶일 것 같다.
      이어지는 2절 말씀에서는 그 구체적인 삶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것 이 그것이다. 오늘도 내 자아가 잘 죽고 예수님이 살아계신 산 제물로 살며 2절에서
      말씀하시는 삶의 방식들이 내 삶에 잘 적용되어 지기를 소망한다.
    • 야긴과보아스 20-08-20
      삶으로 드리는 예배
      롬12;1-8

      로마서 12장을 읽고 묵상할때마다 느끼는 은혜와 도전이 있다.
      요한복음 17장14절에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너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신다.
      동시에 15~18절은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라고 하신다.
      세상의 한복판에서 세상과는 구별된 존재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로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12;1절을 보면
      예수 믿고 난 후 가장 먼저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가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사용하시기 원하시는 성전이다.
      즉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종종 많은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술 마시면 안되는가?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하는가?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지 않냐고 되묻는다.
      그렇다고 피워도 된다는 말씀이 있는가 하면 없다.
      문제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술 마시기전에, 담배피우기 전에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는지,
      먹고 피우기 전에 먹고 피울 수 있는 은혜를 주신것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는지 먼저 물어보고
      마음에 기쁨과 성령충만함이 임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술과 담배에만 한정지을 수 없다.
      내 마음과 삶속에서 무수히 행해지는 거짓과 죄악들은
      술과 담배보다 더 나은가? 그렇지 않다.
       
      내 몸은 의의 병기가 될 수 있고
      불의의 병기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고 싶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드리라‘는 구약에서 제물을 드린다 할때의 의미이다.
      거룩함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 구별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복음을 위해서 나의 몸은 사용되어 지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구약에서 피흘리는 제물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드려졌다.
      나 역시 살아있는 제물로서 나의 존재, 삶을 주님을 위해 바칠 수 있는가?
      그것을 물어보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단 한번의 순교는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는데
      매일 주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이 가능한가이다.
      늘 그것이 어렵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내가 구원받고 의로울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했다.
      하루를 사는 거룩함도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는 가능하다.

      또한 진정한 예배, 마땅한 예배는
      예배를 드린 후 삶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도구로 쓰여지기 위해서
      내 목소리, 생활, 손과 발 등 모든 행위를 하나님앞에 드러내 놓는가를
      고민하는 것임을 알게 한다.

      적어도 몸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마음이 변화되어야 한다.

      나에 대해서 실망할 수 밖에 없는 많은 삶의 조건과 상황이 대부분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넘어지고 무너지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말씀으로 묵상하고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가운데
      어느날 당신이 달라졌어.
      그런 말을 듣게 될 날이 올 것을 믿는다.
      구원얻게 하신 것 만큼이나
      변화된 삶을 살게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시라면
      그 일도 반드시 이루게 하실 것임도 믿는다.

      하루 5분, 10분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한주, 한 달, 일년, 10년, 20년 쌓이고 싸이면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많은 불평과 불만에도 불구하고
      달라져 있음을 기대한다.
      그것이 오늘도 말씀앞에 나를 세우는 이유이다.
    • 느헤미야강 20-08-21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이 무엇일까? 본문은 세가지로 말씀한다.
      이 세대를 본 받지 않는 것,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받는 것,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다.

      세상의 풍조를 본 받지 말라.
      세상의 유행이나 가치관을 금형삼아 똑같이 찍어내고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이고 잘 사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내 인생을 그렇게 찍어내지 말라는 말씀이다. 영적 예배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으로 시작됨을 깨닫는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변화는 마음을 바꿔먹는 것이다. 안과 밖을 바꾸는 것이다,
      내 경험을 보면 결단만으로 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 이르기까지 광야를 거쳤고 광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은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내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내 욕심인지 살펴야 한다.
      분별은 연금술사가 금이나 은을 제련하여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 안에 있는 것들이 하나님의 뜻과 아닌 것을 구별해 내고 제거하라는 뜻이 틀림없다.
      나의 안위를 생각하는 나태와 게으름도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분별에는 입증하다라는 뜻도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 기뻐하심, 온전하신 뜻을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내 삶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선하심과 온전하심을 사람들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주님을 위해 살다가 참수형을 당하여 죽었다. 그야말로 이 세가지를 통과하여 산 예배가 된 사람이다.
      바울이 당시 세대를 본 받는 사람이었다면, 절대로 진리를 위해 죽지 못했을 것이다.
      바울이야말로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변화되었던 그리스도인이었다.

      나 한 사람부터 교회안에서의 삶 못지 않게 삶속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드러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