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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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5 (화) 형제를 용납하고 주님을 위해 사십시오 (로마서 14 : 1~12)

  • seanho
  • 202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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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5 ()

형제를 용납하고 주님을 위해 사십시오

로마서 14 : 1~12

 

오늘의 찬송

(463 518 신자 되기 원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14:1~4

 

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하여 14:5~12

 

5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본문 해설

 

믿음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14:1~4

 

신앙생활에서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바울은 구원과 관계된 본질적인 부분을 다룰 때는 단호한 태도를 보입니다.

하지만 비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부드럽고 온화하게 다룹니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이 연약한 자는 모든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도

여전히 음식에 관한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반면 너희로 지칭되는 성도는 음식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자유롭게 음식을 취급했습니다.

바울은 무엇을 먹든지 먹지 않든지 그것으로 인해 서로 비판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의와 평강이 희락을 누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본질 안에서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비결입니다.

-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대하는 성도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나요?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지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하여 14:5~12

 

사람마다 각자 개성이 있는 것처럼 믿음의 양상도 다양합니다.

바울은 음식과 절기에 대해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지라도 성도에게는 이보다 더 중요한 공통의 목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주를 위하여사는 삶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음식과 절기와 같은 신앙의 방법 문제에도 이 공통의 목적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로 삼아 주신 형제를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태도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는 자기만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서로를 용납해 모두가 주를 위하여사는 인생이 되도록

사랑으로 격려해야 합니다.

-

성도의 삶도, 죽음도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나요?

주님을 위한 삶을 선택하기 위해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 느헤미야강 20-08-26
      말이나 행동으로 한사람은 자기 행동을 쉽게 잊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것 때문에 오랫동안 힘들어할 수 있다. 그것이 그의 평생에 걸림돌이 될 위험이 크다.
      판단하고 비난하는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일생을 비뚤게 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큰 고통을 겪고,
      그 사람 안에 있는 좋은 가능성을 잃어버림으로 사회에 끼칠 유익도 함께 상실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비판 대신 격려하고 칭찬하는 작은 일들이,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하는 큰일을 이루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정현구. 생명의 삶 큐티 묵상에세이 중에서 글이 마음에 남아 옮깁니다.
    • 야긴과보아스 20-08-26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롬14;1-12

      교회안에는 믿음이 좋고 부족한 사람이 있다.
      성숙한 사람이 있고 연약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 기준이 사람의 주관적인 반응일 수 있다.
      물론 성경에 예수님께서도 믿음이 적은자들이라고 하신 부분도 있다.
      오히려 한 여인이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드린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형편없은 믿음이라고 평가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높게 평가하셨다.
      목회자 역시 가장 좋은 믿음의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주관적인 평가를 절대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오늘 1절을 보면 연약한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신다.
      연약함을 수용하려면 먼저 내가 철저히 열려 있어야 한다.
      나의 믿음의 개념을 고정시킨다면 불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성경은 수용적인 것을 넘어서 비판하지 말라고 한다.
      그들도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도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놓치지 않기를 소망한다.
    • seanho 20-08-26
      묵상

      예전에는 8절 말씀을 보면 바울의 대단한 믿음과 헌신적인 삶의 모습 앞에서
      내 연약한 믿음의 삶이 비교가 되면서 위축되는 그런 말씀으로 보여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읽고 또 읽고 묵상하다 보면, 참 위로가 되는 그런 말씀으로 다가온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는 고백은 정말 쉽지 않은 고백이고,
      그렇게 행하기는 더욱 어려운 것 같다.
      그런데 은혜는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 '
      우리가 주를 위해서 잘 되고, 성공하고, 잘 살아야만 주의 소유로 쓰임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비록 곧 죽어도 주를 위한 삶이라고 믿음으로 인정한다면 하나님의 소유로 쓰임받는 삶을 산다는 말이다.
      주를 위해서 사는 삶에 대해서 참 부담스럽게 생각했었다.
      청소년 제자들에게도 전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적으로도 성공하는게 유리하다고 가르쳤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나 죽으나 다 주의 것이라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할때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믿음의 삶이 가능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