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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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화) 들음과 따름 사이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레미야 38 : 14~28)
- seanho
- 2020-09-29
- 404 회
- 1 건
2020.09.29 (화)
들음과 따름 사이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레미야 38 : 14~28
다시 묻는 시드기야왕 38:14~19
14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선지자 예레미야를 여호와의 성전 셋째 문으로 데려오게 하고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한 가지 일을 물으리니 한 마디도 내게 숨기지 말라
15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왕에게 아시게 하여도 왕이 결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가령 내가 왕을 권한다 할지라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리이다
16시드기야 왕이 비밀히 예레미야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우리에게 이 영혼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아니하겠으며
네 생명을 찾는 그 사람들의 손에 넘기지도 아니하리라 하는지라
17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당하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18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19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염려하건대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넘기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시드기야왕의 나약함 38:20~28
20예레미야가 이르되 그 무리가 왕을 그들에게 넘기지 아니하리이다 원하옵나니
내가 왕에게 아뢴 바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소서 그리하면 왕이 복을 받아 생명을 보전하시리이다
21그러나 만일 항복하기를 거절하시면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말씀대로 되리이다
22보라 곧 유다 왕궁에 남아 있는 모든 여자가 바벨론 왕의 고관들에게로 끌려갈 것이요 그 여자들은 네게 말하기를
네 친구들이 너를 꾀어 이기고 네 발이 진흙에 빠짐을 보고 물러갔도다 하리라
23네 아내들과 자녀는 갈대아인에게로 끌려가겠고 너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벨론 왕의 손에 잡히리라
또 네가 이 성읍으로 불사름을 당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24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너는 이 말을 어느 사람에게도 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25만일 고관들이 내가 너와 말하였다 함을 듣고 와서 네게 말하기를 네가 왕에게 말씀한 것을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에게 숨기지 말라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또 왕이 네게 말씀한 것을 전하라 하거든
26그들에게 대답하되 내가 왕 앞에 간구하기를 나를 요나단의 집으로 되돌려 보내지 마소서
리하여 거기서 죽지 않게 하옵소서 하였다 하라 하니라
27모든 고관이 예레미야에게 와서 물으매 그가 왕이 명령한 모든 말대로 대답하였으므로 일이 탄로되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그와 더불어 말하기를 그쳤더라
28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날까지 감옥 뜰에 머물렀더라
다시 묻는 시드기야왕 38:14~19
하나님 뜻을 알려 달라고 간구하기 전에, 그 뜻을 따를 마음을 갖추어야 합니다.
시드기야왕은 또다시 위기에 처하자 예레미야를 한번 더 불러 하나님 뜻을 묻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 뜻을 일관되게 전합니다.
왕이 바벨론에 항복하면 살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멸망하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왕에게는 하나님의 해결책이 만족스럽지 못한 듯합니다.
는 바벨론에 먼저 항복한 이들로부터 자신이 굴욕당할 것이라는 염려 때문에 하나님 뜻을 선뜻 따르지 못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왕이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보다 백성의 생명과 안위를 보장해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한 선택임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 뜻을 따르는 것이 언제나 가장 바른 결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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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기야왕이 예레미야를 불러 하나님 뜻을 재차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음에도 결단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시드기야왕의 나약함 38:20~28
사람을 두려워함은 곧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음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을 따를 때 보장되는 약속까지 왕에게 전하며 순종을 종용합니다.
하지만 왕은 여전히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에 옮기기를 주저합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친애굽 입장을 고수하는 유다 고관들의 반응이 두려워 그들 앞에서
자신이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겠다고 말할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애굽이 바벨론의 손에서 건져 주리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시드기야왕은 하나님 뜻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고, 예레미야에게는
자신과 나눈 대화를 비밀로 하라고 요구하는 유약한 지도자였습니다.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불순종의 징계를 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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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기야왕이 하나님 뜻을 분명하게 듣고도 따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 뜻에 순종하기 위해 내가 버릴 편견이나 고집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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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강 20-09-29
- 사람에게는 어떤 결정을 해도 마음에 찜찜함이 남는때가 있다.
내 뜻, 사람의 뜻대로 한 것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할 것인가?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이든
이기지 못하면 사로잡히게 되고, 사로잡히면 분별력을 잃게 된다.
분별력을 잃게 되면 온전한 결정을 하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상황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고.
시드기야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함으로 인해
가장 두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
이전에 이미 예레미야를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니 믿고 따르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예레미야를 만나서 속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달라고 말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예루살렘과 성전,
백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다시 한 번 말한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대처한다.
이것은 두려움의 문제가 중심에 자리잡고 있음을 본다.
친애굽주의자들인 고관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정작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니 하나님말씀을 믿지 못한다.
시드기야의 변명이 놀랍기만 하다.
하나님말씀대로 바벨론에 항복하면 이미 끌려간 백성들이
자기를 조롱할것인데 그 수치를 못 견디겠다는 것이다.
한편 친애굽파인 고관들이 두려우니 바벨론에게 역시 항복 못하겠고.
나라와 백성들, 성전의 존위가 위기를 직면했는데
책임자가 자기의 수치만을 걱정하고 있다.
나 한 사람의 수치로 나라와 백성들, 성전을 지키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길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할터인데
그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나 한 사람의 수치로 많은 사람 살리는게 지도자이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나 침뱉음 당하였고 가시면류관, 조롱과 비웃음,
피흘리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십자가에 오르셨다.
그 수치로 온 인류가 구원얻을 수 있는 길을 여셨다.
나만 해도 조금만 자존심 건드리면 마음이 쉬이 상한다.
믿는다하면서도 뭘 믿는지 의심될때가 많다.
말씀이 펼쳐지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소탐대실해서 작은 이익에 큰 것 놓치면 안된다.
주님앞에 무릎꿇으면 되는데 버티다가 그것 못하겠다고 버티다가
영원한 죽음에 이르러서는 안된다.
시드기야를 보면서 그에게만 뭐라 할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여러번 시드기야에게 말씀하셨다.
또 예레미야를 부른 것은 하나님말씀을 듣고자 함이 아니라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해 달라는 의도가 숨어있다.
친애굽파 고관들도 좋아할 말씀을 기대했을 것이다.
시드기야는 하나님 말씀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 하였다.
결국 그가 기대하지 못했던 가장 비극적인 일을 경험했다.
자신앞에서 아들이 죽는 것을 보고,
자신은 눈이 뽑힌채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시드기야에게 여러번 말씀하셨다.
오늘 나에게는 하나님께서 여러번 말씀하신 것이 없는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가?
그러면서 순종할 것인지 말것인지,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말 것인지
머뭇거리며 건너뛴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드기야를 나무랄 것이 하나도 없다.
오늘 내가 시드기야를 닮아 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알고도, 묵상하고도
그렇게 못사는 내가 시드기야이다.
내가 아직 눈 뜨고 있을 때 보고 읽고 묵상한 것들을
결단하고 말씀대로 살게하여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