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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수)안일한 삶이 지속되면 죄에 머물기 쉽습니다(렘48 : 1~25)
- seanho
- 2020-10-14
- 423 회
- 2 건
2020.10.14 (수)
안일한 삶이 지속되면 죄에 머물기 쉽습니다
예레미야 48 : 1~25
오늘의 찬송
(새 424 아버지여 나의 맘을)
모압에 임할 심판 48:1~10
1 모압에 관한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오호라 느보여 그가 유린 당하였도다 기랴다임이 수치를 당하여 점령되었고
미스갑이 수치를 당하여 파괴되었으니
2 모압의 찬송 소리가 없어졌도다 헤스본에서 무리가 그를 해하려고 악을 도모하고 이르기를
와서 그를 끊어서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자 하는도다 맛멘이여 너도 조용하게 되리니 칼이 너를 뒤따라 가리라
3 호로나임에서 부르짖는 소리여 황폐와 큰 파멸이로다
4 모압이 멸망을 당하여 그 어린이들의 부르짖음이 들리는도다
5 그들이 루힛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울고 호로나임 내리막 길에서 파멸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을 듣는도다
6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여 광야의 노간주나무 같이 될지어다
7 네가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너도 정복을 당할 것이요 그모스는
그의 제사장들과 고관들과 함께 포로되어 갈 것이라
8 파멸하는 자가 각 성읍에 이를 것인즉 한 성읍도 면하지 못할 것이며
골짜기가 멸망하였으며 평지는 파멸되어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로다
9 모압에 날개를 주어 날아 피하게 하라 그 성읍들이 황폐하여 거기에 사는 자가 없으리로다
10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로다
모압이 당할 수치 48:11~25
11 모압은 젊은 시절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이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하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술을 옮겨 담는 사람을 보낼 것이라
그들이 기울여서 그 그릇을 비게 하고 그 병들을 부수리니
13 이스라엘 집이 벧엘을 의뢰하므로 수치를 당한 것 같이 모압이 그모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로다
14 너희가 어찌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용사요 능란한 전사라 하느냐
15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모압이 황폐하였도다
그 성읍들은 사라졌고 그 선택 받은 장정들은 내려가서 죽임을 당하니
16 모압의 재난이 가까웠고 그 고난이 속히 닥치리로다
17 그의 사면에 있는 모든 자여, 그의 이름을 아는 모든 자여, 그를 위로하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가 부러졌는고 할지니라
18 디본에 사는 딸아 네 영화에서 내려와 메마른 데 앉으라 모압을 파멸하는 자가 올라와서
너를 쳐서 네 요새를 깨뜨렸음이로다
19 아로엘에 사는 여인이여 길 곁에 서서 지키며 도망하는 자와 피하는 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을지어다
20 모압이 패하여 수치를 받나니 너희는 울면서 부르짖으며 아르논 가에서 이르기를 모압이 황폐하였다 할지어다
21 심판이 평지에 이르렀나니 곧 홀론과 야사와 메바앗과
22 디본과 느보와 벧디불라다임과
23 기랴다임과 벧가물과 벧므온과
24 그리욧과 보스라와 모압 땅 원근 모든 성읍에로다
25 모압의 뿔이 잘렸고 그 팔이 부러졌도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문해설
모압에 임할 심판 48:1~10
은혜로 사는 인생이 자신의 공로나 업적을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모압은 강우량이 풍부하고 샘이 많아 포도 농사와 목축업에 적합했습니다.
모압은 경제적 풍요를 누렸으나 그모스 신을 숭배하며 타락의 일로를 걸었습니다.
심지어 인신 제사까지 드렸습니다(왕하 3:26~27).
그들은 인간적 업적과 재물을 하나님보다 의지하는 교만에 빠졌습니다.
이로 인해 모압에 파멸과 전쟁, 어린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가득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압을 심판하기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쓰임받는 심판 도구는 자고해서는 안 됩니다.
겸손은 은혜를, 교만은 심판을 불러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만 자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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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원인은 무엇인가요?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지 말아야 할 나의 자랑은 무엇인가요?
모압이 당할 수치 48:11~25
평안할수록 영적 안일과 우상의 덫에 빠지기 쉽습니다.
모압은 지형적인 여건과 능란한 외교술로 외세의 침입을 받지 않았습니다.
마치 한번 담은 포도주를 다른 그릇으로 옮겨 담는 일이 없는 것 같은 안정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평안과 번영은 그들로 하여금 죄악 된 삶에 머물게 했습니다.
이에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께서 모압의 심판을 예고하십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북 이스라엘이 벧엘의 금송아지를 의지해 수치당한 것처럼,
모압이 그모스 우상으로 인해 수치당할 것입니다.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가 꺾이듯 모압의 모든 힘과 자랑이 한순간에 꺾일 것입니다.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을 누리면서 타락과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기보다는
고난을 통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이 더 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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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과 번영을 누리며 죄악에 빠졌던 모압은 결국 어떻게 되나요?
고난 없이 평안하기만 한 삶은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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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강 20-10-15
- 애굽, 불레셋의 심판 후에 이제는 모압의 심판을 말씀하신다.
아브라함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 땅에서 탈출하여 소알성에 머물 후에
큰 딸에게서 난 민족이 모압민족이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심각한 문제 없이 살았으나
자신의 죄악 때문에 멸망한 족속이다.
1절에 언급된 느보, 가랴다임, 미스갑은 모압의 도시들이다.
중요한 것은 도시보다 여기에 언급된 동사들이다.
유린당하였도다. 수치를 당하여, 점령되었고, 파괴되었으니.
이 도시들이 파괴되고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2절은 모압의 찬송 소리가 없어졌도다 라고 말씀한다.
그들에게 찬송이 있는가? 이 찬송은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아니다.
이방인들에게도 자기들마다 찬송할 거리가 있다.
모압은 그들이 가진 자랑거리가 많았다.
안전한 거처, 부요한 삶 등이 자랑거리였고 그것을 찬양했다.
하나님은 그들의 자랑거리로 인해 교만함을 심판하시겠다 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열국의 하나님이고
그들도 심판하신다.
나는 내가 인생주인이었다가 하나님으로 바뀐 인생이다.
나의 찬송거리는 하나님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자랑거리는 얼마든지 많다.
집, 자녀, 성공, 큰 목회, 성공한 목회(?) 등등
꺼리만 되면 자랑하고 싶은 일은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심판의 날에 무슨 자랑거리가 남아 있을까?
하나님은 모압이 유다에게 심각한 잘못행함이 없어도
그들이 가진 자랑거리로 인해 심판하신다고 하신다.
내 삶속에서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고
어떤 것을 자랑일삼는다면 그 자랑거리를 일시에
무너뜨릴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신다.
오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까닭에 주어진 은혜임에도
나 때문에 주어진 것으로 오판하고 자랑하는 것들은 없는가?
안정과 번영을 누리며 교만에 빠진 삶 역시
심판당하고 그렇게 살아야 했냐고 물으실 하나님을
날마다 두렵게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
매일 말씀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하신다. -
- 야긴과보아스 20-10-15
- 1.
‘네가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너도 정복을 당할 것이요’(7절)
모압은 내가 이룬 성취를 심히 의뢰했다.
그러다가 멸망했다.
명함에 쓸 업적을 많이 채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나님안에 머무는 삶이 아니라면 어떤 업적도 무의미함이다.
오늘의 나는 어떤가?
아이(자녀)를 제물처럼 여기는 삶은 없는가?
내 자랑거리로 자녀를 삼는 것은 없는가?
여유만 있다면 하루종일 이 학원 저 학원 끌고 다니는 싶지는 않는가?
교육에 목숨걸고 있지 않은가?
아이 가르친다는 명분으로 시대 상황에 영합하고 있지는 않는가?
어른들의 시스템에 맞추어, 나의 기준과 성공가치에 맞추어
내 아이들을 인신공양하듯 이리 저리 끌고 다니는 것은 아닌가?
2
하나님은 심판의 말씀을 포도주 비유를 가지고 예로 드신다(11-13).
모압은 고원지대에 있어서 포도원이 많았다. 포도주가 많았다.
포도주를 담가 놓으면 한 통에 오래 숙성시킨다.
그리고 가라앉은 찌꺼기가 발효되어 포도주를 숙성시킨다.
이처럼 모압의 평화로운 삶을 이렇게 표현하신다.
편안함, 부유함, 잘 살더니 술 옮겨 놓을 사람을 보내셨다.
결국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 주전 582년에 멸망당했다.
그로 인해 수치를 당하고 말았다.
그모스가 전쟁신인데 자식 바쳐 평화가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더 강한 나라와 군대가 쳐 들어오니 소용없고 무기력한 신으로 증명되었다.
당시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었으니 그 충격을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황소는 노동력 근원인 시대였으니 신의 모습은 당연한 것이었다.
모세가 십계명 받을때에 산 아래에 있는 백성들이 만든것도 황소형상이었다.
여로보암도 기회 받았으나 단,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 만들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통치자가 되었다.
자기만 아니라 온 백성들 그리되게 했다.
인간은 잘못된 일 끊임없이 반복하고, 역사도 반복된다.
인간은 넘어진 것들 때문에 또 그것에게 넘어진다.
나도 충분히 그렇다.
그러다가 결국 수치를 당한다(13).
모압은 그들이 의지했던 것들이 하나님의 심판앞에서
아무것도 지켜주지 못했다.
편안하면 교만하게 되고, 가진 것이 늘어나면 더 갖고 싶어진다.
욕심은 탐욕이 되고, 탐욕은 우상숭배로 나아간다.
내가 만든 신에게 구하여 더 가지고 누리게 해 달라고.
그러나 어떤 우상도 지켜주지 못한다.
결국은 수치와 죽음이다.
나는 어디쯤 서 있을까?
머물고 있는 이 땅, 우리 교회, 내 나라는 어디에 서 있을까?
뭘 놓고 기도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