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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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토)심판 후에 주시는 회복의 신호(렘52 : 24~34)

  • seanho
  • 202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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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1 ()

 

심판 후에 주시는 회복의 신호

예레미야 52 : 24~34

 

오늘의 찬송

(93 예수는 나의 힘이요)

 

 

사로잡힌 백성 52:24~27

 

24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25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

26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

27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리블라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에서 떠났더라

 

 

여호야긴왕의 회복 52:28~34

 

28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29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30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31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32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33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34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본문해설

 

 

사로잡힌 백성 52:24~27

 

경고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는 철저한 심판입니다.

예레미야가 백성에게 미움당하며 눈물로 전한 경고의 말씀들이 어김없이 성취됩니다.

바벨론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성에 남아 있던

대제사장과 부제사장을 비롯해 그곳에 있던 이들을 사로잡아 느부갓네살왕이 진 치고 있던 리블라로 압송합니다.

느부갓네살왕은 그들을 모두 처형합니다.

제사장들의 죽음과 백성의 흩어짐은 죄로 인해 그들이 누리던 특권과 지위가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반복적으로 전하신 경고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특권과 지위는 순종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

예루살렘성 안에 있다가 느부사라단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은 어떤 운명을 맞았나요?

하나님이 주신 특권을 누리는 삶과 순종은 어떤 관련이 있나요?

 

 

여호야긴왕의 회복 52:28~34

 

하나님이 정하신 징계의 기간이 차면 회복이 찾아옵니다.

여호야긴왕은 왕위에 오른 지 3개월 만에 바벨론으로 붙잡혀 갔습니다.

37년 동안 바벨론의 감옥에 갇혀 고통의 세월을 보낸 그는 느부갓네살왕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왕위에 오르자 비로소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에윌므로닥왕은 유다 포로인 여호야긴왕을 바벨론의 여러 왕들보다

높이며 그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여호야긴왕은 죄수의 옷을 벗고 평생 동안 바벨론 왕과 함께 식사하는 특권을 누립니다.

여호야긴왕의 회복 소식은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 수 있음을 소망하게 합니다.

 택하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재앙이 아닌 평안입니다.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유일한 소망으로 붙잡는 것이 회복의 길입니다.

-

바벨론 에윌므로닥왕은 여호야긴왕에게 어떤 호의를 베푸나요?

오랜 고난과 시험 가운데서도 내가 낙심하지 않고 붙잡아야 할 소망은 무엇인가요?

    • 느헤미야강 20-10-31
      대제사장 스라야, 부제사장 스바냐, 성전 문지기 세 사람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한 사람, 내시 칠 명,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
      평민 육십명이 하맛 땅 리블라에서 다 쳐 죽임당했다(렘52;27)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하신 것은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노예 생활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유다가 살길이고 백성들이 살 길이라 하셨다.
      내 백성을 단련시키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한 길이 그것이었다.
      끌려가되 대항하지 말고 항복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았다.

      결국 쳐 죽임당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살길을 찾고자 하던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끌려가는 게 살 수 있는 길인데 거부하니 죽임당했다.
      내 생각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그래서 하나님 생각을 놓쳐 버리고 마는 일이 내게도 종종 있다.
      바벨론에 가면 하나님이 배우게 하시는게 있다.
      거기에서 배우면 반드시 풀려날 시간이 오게 된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 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31)

      여호야긴이 바벨론에서 옥에서 풀려나 왕의 지위를 복권 받았다.
      .
      마치 바벨론에서 시드기야가 왕의 지위를 복권받은것처럼
      유다 백성들도 회복은 반드시 온다.
      오늘 맞이한 여러 가지 교회와 시대의 위기, 성도들의 위기앞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미루어 살피고
      내 생각대로 행동하고 말하지 않기를 소원한다.
      지금의 상황이 갇혀 있는 상황이 바벨론이 아닌가?
      바벨론에서 내가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회개, 참회, 말씀으로 돌아가기, 하나님의 주권 신뢰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