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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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 (수)지극히 높으신 이의 승리는 곧 성도의 승리입니다(단7 : 15~28)
- seanho
- 2020-12-02
- 369 회
- 3 건
2020.12.02 (수))
지극히 높으신 이의 승리는 곧 성도의 승리입니다
다니엘 7 : 15~28
오늘의 찬송
(새 391 오 놀라운 구세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가 누릴 유업 7:15~18
15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머리 속의 환상이 나를 번민하게 한지라
16내가 그 곁에 모셔 선 자들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말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려 주며 이르되
17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
18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가 누릴 승리 7:19~28
19이에 내가 넷째 짐승에 관하여 확실히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더라 그 이는 쇠요 그 발톱은 놋이니 먹고 부서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서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을 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그의 동류보다 커 보이더라
21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
22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
23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라서
온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서뜨릴 것이며
24그 열 뿔은 그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6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27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28그 말이 이에 그친지라 나 다니엘은 중심에 번민하였으며 내 얼굴빛이 변하였으나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느니라
본문해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가 누릴 유업 7:15~18
그리스도인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붙잡고 사는 사람입니다.
환상을 보고 번민하는 다니엘에게 천사가 나타나 그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네 마리의 짐승은 앞으로 세상에 등장할 네 왕국과 왕입니다.
다니엘서에서 왕과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긴밀한 연관성을 지닙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지상의 왕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승리의 영광과 영원한 나라를 얻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이 본 ‘인자 같은 이’(7:13)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18절)과 동일시됩니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곧 성도의 승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계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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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본 후에 다니엘은 그 해석을 알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하나요?
성경의 의미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가 누릴 승리 7:19~28
하나님 나라에는 반전과 역설이 있습니다.
천사가 환상을 해석해 주었음에도 다니엘의 마음에 번민이 남아 있습니다.
그가 본 넷째 짐승 때문입니다. 넷째 짐승은 처음 세 짐승과 달리 심히 무섭고 잔인해 보였습니다.
그 머리에서 나온 열한 번째 뿔은 하나님을 훼방하는 말을 하고 성도를 박해합니다
(20, 25절; 참조. 마카비상 1:16~64).
성도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즉 한정된 기간 그의 수중에 떨어져 무력하게 패배당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성도의 원한을 풀어 주시기 위해 역사에 개입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기를 희생함으로 승리하는 역설이 작용합니다(계 5:6).
성도의 최후 승리와 영광에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희생하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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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를 대적한 자와 성도는 각각 어떤 최후를 맞나요?
고난 가운데 있는 지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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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anho 20-12-02
- 묵상
오늘 말씀을 보면서 많은 그리스도인 들은 '그래!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승리의 날,
믿는자가 결국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날이 올거야'라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런데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결국 이기시고 완전하게 세상을 다스리는 날을
우리는 진정으로 바라고, 기다리고, 그 날을 준비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는 세상의 권세, 세상의 문화가 지고 망하는 것을 기뻐할 준비가 되었는가?
말씀에 등장하는 '거룩한 백성' '성도' 즉 하나님 편에서 박해를 견뎌내고
결국 하나님의 승리를 맞보는 편에 당연히 서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알고보면 세상의 편에서 하나님 나라가 지체되기를 바라면서, 세상을 즐기고,
알게 모르게 세상이 좋아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날이 올때는 정작 허무하고, 아쉬워하지는 않을지...
지금 자신의 위치, 어느 편에 서있는지, 무엇으로 인해서 기쁨을 얻는 삶인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지를 먼저 점검해야 할 것같다.
하나님의 승리가 나의 승리 나의 기쁨되기를 바라며, 하나님편에서 그 날을 기대하는 믿음이 준비되기를... -
- 야긴과보아스 20-12-03
- 다니엘이 환상을 알수 없어 번민하고 천사들에게 물었을 때 얻는 답이 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는다고 한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21,22)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27)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는다고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 얻는 것인데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인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얻는다고 한다.
이 무슨 복인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과 성도들은 동일하게 대우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러고보니 성경말씀은 늘 그랬다.
창12;3절에 아브람을 부르시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라 하셨다.
하나님과 아브람을 동일시하셨다.
행전9장에도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다 예수님 만났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 핍박하느냐
사울은 예수 핍박하지 않았고 단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셨다.
성도 핍박은 곧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라 하셨다.
예수님은 성도를 자신과 동일시 하셨다.
그러니 예수 죽으심은 내가 죽은 것이고
예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 되는 이치임을 새삼 깨닫는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얻는 것은 가능하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나라 시작되었으니
믿는 나에게 하나님의 나라 역시 시작되었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한 나라의 통치를 위임받았듯이
이 또한 믿는 성도에게도 누리게 하실것이라는 말씀이 감동이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 땅에 임하는가?
주를 믿는 내가 있는 곳에 하나님나라 임하는 것이구나.
그래서 주기도문도 하늘에서 임하듯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가 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오늘 내가 걷는 모든 발걸음위에
하나님나라가 세워져 가는 것임을 알고
발걸음, 몸짓 하나 하나를 새롭게 해야 함을 고백한다. -
- Coramdeo 20-12-03
- 말씀자체가 참 난해하다
느헤미야 강님의 말씀을 묵상해본다
12월호 큐티 하용조목사님의 믿음으로 받아 누리는 복음의 능력과 축복이라는 내용이 연상된다
복음의 능력과 축복은 미래의 것이 아니고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러기에 지금 날마다 누릴수 있다 라는 내용이다
내가 어떠한 존재인가를 진정으로 깨닫는것이 참으로 중요함을
하용조 목사님의 글속에 안타깝게도 은혜의 문턱에 오랫동안 서 있기만 할 뿐 은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씀이 가슴에 남는다
나 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들과 주변의 사람들이 주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잘 알지 못하여서 영적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들을 볼때 너무 안타깝다
아는 만큼 누릴수 있을텐데 ...
오늘 큐티묵상의 제목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승리는 곧 성도의 승리입니다 이다
나 혼자서는 어떠한 것도 이길수 없지만 우리 하나님 께서 이미 승리 하셨기 떄문에 나는 그분과 함께 연합하여 가면 승리는 보장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