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0220701(금), D6묵상, 갈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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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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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으라

아마도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돕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닌

것 같기 때문 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상황에 들어가면, 내가 설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자신의 할 일에 집중해야

하고, 그들은 그들 일을 걱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소홀해서나 강팍해서가

아니고, 다른 이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

말이다. 나는 전적으로 이해한다.

나 자신도 너무나 공감한다. 그리고 남의 일에

관여할 때는 언제나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우리가 서로에 대해 가져야 한다는 성도의

책임을 무시 하고 있다.

 

2. 질문하라

Q 성도들은 어떤 책임이 서로에게 있는가?(1-2)

Q 오늘 당신에게서 이것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본문이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은 기도하고

말씀만 보는 삶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짐을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삶입니다(2).

그리스도의 법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새계명입니다.

 

범죄한 형제가 드러나면 그 죄를 직면하고

온유함으로 형제를 바로잡아 주는 것이

서로 짐을 지는 하나의 방식입니다(1).

이것은 당시나 오늘날의 교회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냥 넘겨주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심판자로서가 아니라

동일한 형제로서 바로잡아주는 것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이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교회는 이렇게 해서 교회로 세워져 갑니다.

 

형제의 짐을 서로 진다고 할 때 그 짐은

혼자서는 질 수 없는 인생의 모든

다양하고도 무거운 짐들을 의미합니다(2).

그러나 서로 짐을 지는 일을 막는 요소는

교만과 비교입니다(3,4).

자기가 뭐가 된 줄로 착각하는 자는

진정으로 형제의 짐을 져줄 수 없습니다(3).

남과 비교함으로써 자기를 확인을 한다면

역시 남의 짐을 져줄 수 없습니다(4).

그러나 서로 짐을 져주는 것 뿐 아니라

각자 자기가 져야만 하는 자기의 짐도 있습니다(5).

 

5절의 짐은 2절의 짐과 다른 단어인데,

이것은 혼자서 질 수 있는 배낭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자기 몫을 감당하면서도

남의 짐을 져줌으로써 사랑으로 종노릇함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서로 짐을 지는 삶을 경험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누구의 짐을 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알게 하신 형제의

무거운 짐이 있는가?

나는 육체를 위하여 심는 삶을 사는가,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아직도 육체에 속한 무언가를

자랑하는 자리에 있는가, 아니면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살아가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정직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3. 반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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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성도들이 서로를 돌볼 때 교회는 강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