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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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7(화) 배타적이지만 모두를 포함하는 복음, 벧후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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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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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베드로후서 3:9) 

베드로후서는 예수님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에 대한 가르침을 강조하며, 거짓 교사들의 미혹과 불신앙을 경고하는 편지입니다. 3장은 주의 날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정말로 임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와 조롱에 대한 응답입니다(3:34). 당시 사람들은 조상들이 잠든 이후로 세상이 아무 일 없이 그대로인데, 도대체 그리스도의 재림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었습니다. 이런 회의론자들에게 베드로는 하나님의 시간 개념은 인간과 다르며(3:8), 주님의 더딤은 지체나 무능이 아니라, 극률과 오래 참으심의 표현이라고 강조합니다. 

복음은 한편으로 배타적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14:6). 모든 인류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이며, 어떤 사람도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은 인간의 자력 구원을 철저히 배제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복음은 가장 포괄적인 초대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벧후 3:9). ,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지만, 그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죄의 무게, 행위의 과거, 민족, 배경, 성격all are invited. 이는 에스겔 18:23“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랴는 말씀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이처럼 기독교 복음은 처음에는 우리 모두를 구원에서 제외된 자로 선언하지만, 동시에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10:13).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자주 의심하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더딤멸망을 유보하시는 사랑의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은 심판보다 구원을 먼저 원하시는 분입니다. 이 구절은 창세기에서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을 언급한 3:67과도 연결됩니다. 홍수 전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준비하게 하시며 오랜 시간을 주셨고, 그 시간은 사람들에게 회개의 기회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지연은 은혜의 시간입니다. 또한 에스겔 18:23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랴... 돌이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않겠느냐는 말씀과도 연결되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신다는 하나님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이유를 바로 이 회개를 기다리는 사랑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 안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대기나 무관심이 아니라, 회개와 거룩한 삶으로 그 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3: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