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8(금), 작은 말, 큰 파문: 공동체를 지키는 성경적 지혜, 딛 3;9-11
디도서 3;9-11
9절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10절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11절
이러한 사람은 이미 뒤틀려서 죄를 짓고 있으며 스스로 정죄를 받은 자임을 네가 아느라.
디도서 3:9-11은 단순히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라”는 정도의 권면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영적 원칙을 가르치는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에는 그레데 교회의 복잡한 상황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 교회를 바로 세우도록 했는데, 당시 교회 안에는 족보 이야기, 신화, 율법 논쟁, 끝없는 말다툼을 즐기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이들은 “진리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논쟁을 벌였지만, 실제로는 공동체를 지치게 하고,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며, 복음의 길을 흐리게 만드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서 3장에서 먼저 성도들에게 선한 행실을 강조한 후, 9절에서 방향을 바꾸며 “어리석은 논쟁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런 것들은 무익하며 헛될 뿐이고, 결국 공동체의 평안을 깨뜨리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보기에 불필요한 논쟁은 교회 전체를 무너뜨리는 아주 작은 균열과 같습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큰 파문을 일으켜 공동체를 흔들어 놓습니다.
이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해 보면, 마치 하나님 보좌 앞의 고요한 유리 바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계시록이 묘사하는 유리 바다는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 아래 있는 절대적 평온의 상징입니다. 이른 아침 햇빛 아래 잔잔한 연못처럼, 물결 하나 없는 고요함이 그대로 펼쳐진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아주 작은 돌멩이 하나, 바람 한 줄기, 작은 곤충 하나로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런 작은 자극이 만들어내는 파문은 연못 전체를 뒤흔들어 버립니다.
바울이 경고한 논쟁과 분쟁도 이와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하고, 심지어 “진리를 위한 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공동체 전체를 흔드는 영적 파문을 일으킵니다. 한 사람의 불필요한 말, 가벼운 비판, 조그만 댓글 하나가 가정의 공기, 교회의 분위기,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에게 “한두 번 훈계하되, 그래도 계속 분쟁을 일으키면 멀리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사랑 없는 단절이 아니라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단호한 사랑의 선택입니다. 계속해서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을 그대로 두면, 결국 약한 사람들은 상처받아 떠나고, 리더들은 지쳐 쓰러지고, 남은 사람들은 불신 속에 갇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남을 향한 비판의 잣대로 사용하기보다, 먼저 자신에게 향한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나는 혹시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아니었는가?”, “나는 진리를 말한다면서 사실은 내 감정과 고집을 밀어붙인 적은 없었는가?”, “나의 말이 사람을 살렸는가, 아니면 상하게 했는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야 합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유리 바다를 흔드는 돌멩이가 될 수도 있고, 흔들린 파문을 가라앉히는 온화한 숨결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디도서 3:9-11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진리를 사랑하되 논쟁을 사랑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되 관계를 살리는 방식으로 말하며, 평화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단호한 거리두기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나가는 말 하나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늘 하나님 앞에서 점검하며, 하늘 보좌 앞 유리 바다 같은 평안을 지키기 위해 더욱 신중하고 겸손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공동체를 다시 그분의 손 아래 고요한 유리 바다처럼 평안하게 세워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