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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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묵상: 12.3(수)·니고데모, 요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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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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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1-9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라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난다는 말입니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본문 해설

니고데모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높은 위치에 있던 바리새인이자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다. 

그는 종교적 지식과 권위를 갖춘 자였지만, 예수께서 행하시는 표적 안에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일’의 실체를 느끼고 깊은 갈급함을 품게 되었다.

흥미로운 장면은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자신의 신앙적 혼란을 드러내기 두려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는 결국 예수께 나아갔다는 것이다. 

갈급한 심령은 결국 그분께로 향한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종교적 지식이나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이 필요하다고 선언하신다. 

이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영적 변화였다. 

 

‘바람’에 대한 비유는 성령의 주권성과 자유로움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성령의 역사는 인간이 정의할 수 없지만, 그 변화의 열매는 분명하게 나타난다.

니고데모의 이야기는 신앙이란 단순히 알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 삶 전체가 변하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그는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예수님의 장례를 돕는 용기 있는 제자로 변화된다(요 19:39). 

 

성령의 바람은 이렇게 우리의 두려움과 지식을 넘어,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 가신다.

 

 

니고데모는 요한복음에 세 번 등장한다(3장 밤중 방문, 

7장 산헤드린에서 예수 옹호, 

19장에서 장례 준비). 

이는 그의 믿음이 점진적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