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겸손과 순종을 통해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 - 마 3:11~17

  • 겸손과은혜
  • 2016-01-10
  • 714 회
  • 2 건
오늘 나온 말씀에서 예수님과 세례요한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겸손&순종" 임을 읽게되었습니다
큐티 제목처럼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겸손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시작 된걸 볼수 있었듯이,

내가 먼저 겸손과 순종을 함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길 소원하며 또
우리 새생명교회 성도님들의 겸손과 순종을 통해 우리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온전히 이뤄지길 소원합니다.

내가, 우리 교회가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 -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겸손과 순종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저희 모두 다같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를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 늘감사 16-01-10
      아멘입니다. 물이 아래로 아래로. 흐를때에야 모든건을 품을수 있듯이
      겸손함이야말로  모든것을 아우를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때 순종도 나오는 것임을 ...
    • 은혜로다 16-01-10
      20160109 마3;13-17절 묵상나눔

      16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왜 죄 없는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굳이 세례를 받으려고 했으며,
      또 세례를 받으셨는가?
      예수님께서 과연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있으셨는가?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셨기에 회개의 세례는 필요 없으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세례는 다른의미를 담고 있다.
      구속적 의미이다.
      세례 요한이 고백한대로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 이셨다.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시나 우리와 같은 죄는 없으셔야 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완전한 모범이 되셔야 했기 때문이다.
      세례가 죄인의 삶을 새롭게 하는 분기점과 표가 되는 것처럼
      예수님의 세례도 예수님 자신이 이제 공생애를 시작하신다는 결정적인 표가 된다.

      구약시대에는 죄인이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동물에게 자기 죄를 전가시키기 위해서 동물에게 안수를 했다.
      죄를 전가받기 전은 동물이고, 전가받은 후에야 제물이다.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기에 자신의 죄를 전가할 수 없다.
      제사장인 세례요한을 통해서 세례받으신 것은
      온 인류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한 안수행위이다. 
      이때 예수님은 인류를 위한 제물되신 것이다.

      오늘 믿는 자의 세례가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인류를 위한 제물되신 사건이 주님에게서라면
      혹, 복음을 위한 제물되겠다고 선언하고 다짐하는 사건이
      나에게서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닌가?
      겁나고 두렵다.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관주성경 요9;4에 따르면
      ‘그래야 주의 일을 하리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을 공식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관주성경 요4;34에 따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니라”

      위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모든 의를 이룬다’는 말은
      세례를 받아야 공식적인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세례는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이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상징하는 엄숙한 선언이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은
      예수님께서 죄인의 대표로
      인간의 모든 죄를 책임지심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이 감당해야 할 모든 죄를
      예수님께서 뒤집어 쓰게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는 순간 성부, 성자, 성령이 동시에 등장한다.
      16절, 17절말씀이다.
      이는 성경에서 유일한 장면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다(성자 하나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그 위에 오셨다(성령 하나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아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소리가 들였다(성부 하나님)

      예수님의 세례받으심이 그만큼 중요하고,
      그만큼 의미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하나님의 아들의 공생애를 시작 한다는 선언임과 동시에
      하늘의 공식적인 인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굳이 죄인이 아닌데 죄인의 모습으로 서려 하셨고,
      생양이 될 필요가 없었음에도 희생양이 되겠다고 선언하셨다.
      이는 바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한 예수님의 노력이며,
      진정한 인간 이해를 위해 인간이 겪어야 하는 모든 것을 손수 체험하시고
      그의 사역에 임하시겠다는 놀라운 사랑의 발로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다.
      오직 진정한 인간 이해를 위해서 그는 친히 인간이 겪는 모든 것을 경험하신 것이다.
      -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 친히 우리가 당할 질로를 당하셨다.
      - 친히 우리의 형제가 되셨다.
      - 친히 우리의 친구가 되셨다.

      나는 이런 위대한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다.
      도대체 이 세상에 예수님 외에 누가 이런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가?
      도대체 이 세상에 있는 신 중에 이렇게 인간을 이해하기 위하여 친히 고통당하는 신이 있단 말인가?
      도대체 이 세상 어디에서 이런 사랑을 느낄 수 있는가?
      하나님이 친히 인간이 되셨다.
      하나님이 친히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자리에 오셨다.
      하나님이 친히 죄인의 친구가 되셨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은
      단순히 아무 의미 없는 세례가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하여
      친히 인간의 죄를 체험하신 그 놀라운 사랑의 발로이다.

      입을 다물 수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