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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개요(2): 내용

  • 최고관리자
  • 202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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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개요(2)

 

4. 내용

핵심구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사도행전은 두 부분으로 나눌수 있음:

1-12장: 베드로의 사역, 유대인 청중, 이방인에게도 증거되기 시작

13-28: 바울의 사역. 복음이 이방인 세계로 퍼져나감 

유대인에게 전한 베드로의 메시지에서 두드러진 말은 회개하는 것이며(행2:37-38) 

이방인에게 전한 바울의 말은 믿으라(행16:30-31)는 것. 


초대교인들이 증거한 중심문제는 그리스도의 부활.

이것은 바울을 회개시킨 진리이며 바울이 전한 복음의 힘이 됨.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절대로 소홀히 할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지만 

초대교인들의 증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아직도 살아계시다는 것임.

 

전체 구조는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져 있음. 

성령 받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파하면서 어떻게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고, 확장되고, 교회가 견고히 서는가를 보여줌. 

 

사도행전 전반부 이야기(1-12장)

 

서론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지내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신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는 누가복음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시작하여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실 것을 선언하셨고, 그분을 따르는 이들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도록 부르셨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으며, 왕의 보좌에 앉으셨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분의 나라에서의 삶에 관해 가르치시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예수님은 곧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이 그분의 임재 안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것은 구약 선지자들이 오래도록 소망해 온 약속의 성취였다. 메시아의 나라가 임하면 하나님의 임재, 곧 성령이 새 성전이 되는 그분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예수님은 이 일이 일어나면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그분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후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신다. 이 장면은 다니엘 7장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고난을 받은 후 부활하신 예수님이 인자로서 보좌에 앉아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고 계심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분은 언젠가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신다.

 

사도행전의 주요 주제들과 구성은 바로 이 1장을 바탕으로 한다. 

이 책은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그분의 백성을 인도하시며 세상의 모든 민족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도록 초대하시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먼저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것으로 시작하여 인접한 유대 지역과 이방인이 많이 사는 사마리아로 확장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모든 민족에게, 곧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게 된다.

 

예루살렘에 초점을 둔 이 단락은 오순절을 기다리는 제자들과 각국에서 온 유대인 순례자들이 성 안에 머무는 장면으로 막을 연다. 그때 성령이 세찬 바람처럼 제자들에게 임하고, 불꽃 같은 것이 각 사람 위에 내려앉는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선포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언어들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은 제자들의 말을 완벽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기서 누가가 강조하는 점을 이해하려면 이 장면이 구약의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먼저 바람과 불은 성막과 성전을 가득 채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불같은 임재를 직접적으로 암시한다. 이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오셔서 메시아의 나라의 새 성전에 임하실 것이라는 예언적 약속과도 연결된다.

이제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의 불 같은 임재는 건물이 아니라 그분의 백성 안에 거하신다. 누가는 선지자들이 약속한 새 성전이 바로 예수님의 새 언약의 가족, 곧 그분의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새 성전에 거하시게 될 때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메시아 왕 아래 통일되고,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기쁜 소식이 열방에 선포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누가는 오순절에 모인 사람들이 여러 나라와 다양한 족속에서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음을 자세히 기록하며, 그들이 베드로의 설교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도 설명한다.

 

사도들의 쉼 없는 외침을 통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인정하게 되고, 관대함과 찬양과 기쁨이 가득한 새로운 공동체가 생겨난다. 그러나 모두가 기뻐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부터 누가는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이 얼마나 빠르게 유대 지도자들의 반대에 부딪히는지를 보여 준다.

 

누가는 매우 아름다운 대칭 구조를 이용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나님의 새 성전인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는 날마다 성전 뜰과 서로의 집에서 모이기를 힘쓴다. 그 사이에 베드로와 사도들이 성전 뜰에서 병자를 치유하는 이야기가 두 번 등장한다. 그들을 체포하는 성전 지도자들 앞에서 베드로는 매번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심을 선포하는 설교를 한다.

 

또 그 중심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재산과 소유를 나누어 가난한 자들을 위해 공동으로 사용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누가는 왜 이 이야기를 강조할까. 그 이유는 이러한 일들이 원래 토라의 율법에 기록되어 있으며, 본래 예루살렘 성전과 성전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누가의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나님이 본래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목적을 이제 새 성전인 예수 공동체가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소가 되었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관대하심과 치유의 임재를 경험하는 공동체가 되었다.

 

두 성전 사이의 갈등은 사도행전 6장과 7장에서 절정에 이르고, 첫 번째 박해의 물결이 일어난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자 더 많은 지도자가 필요하게 되었고, 스데반은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언하다가 붙잡힌다. 성전을 거스르고 위협했다는 혐의로 고소를 당한다. 공회 앞에서 스데반은 긴 설교를 통해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항상 배척해 왔으며, 예수님도 거절했고 이제 제자들까지 거절하고 있다고 질책한다. 이에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격분하여 스데반을 죽이고 큰 박해가 일어난다.

 

이로 인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역설적이다. 누가는 이 비극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유대와 사마리아로 보내셨는지를 보여 준다. 이 단락에서 누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인 공동체가 어떻게 국제적인 다민족 운동으로 변해 가는지를 보여 준다.

 

먼저 사마리아로 간 빌립의 사역이 등장한다. 유대인들이 원수처럼 여기던 그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된다. 

 

다음은 훗날 바울로 불리게 되는 다소 사람 사울의 회심 이야기이다. 그는 제자들의 목숨을 노리던 열렬한 박해자였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리스도의 열렬한 옹호자가 된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베드로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이 이방인을 부정하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역시 예수님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로마 백부장의 집에 찾아가 말씀을 전하자 그곳에 있던 이방인들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성령이 그들 위에 강하게 임한다. 마치 처음 유대인 제자들에게 임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모든 주제들은 결국 로마 제국의 가장 큰 국제 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지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누가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된 유대인 지도자 바나바가 바울과 함께 이 교회를 이끌었다고 기록한다. 이곳은 최초의 대규모 다민족 교회가 되었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곳이기도 하다. 또한 선교사들이 다른 나라로 처음 파송된 곳도 바로 이 안디옥 교회였다. 이렇게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명령이 실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사도행전 후반부(13-28장): 

 

바울은 그의 동료들과 함께 로마 제국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예수가 왕이시라는 복음을 선포한다. 첫 번째 선교 여행은 현재 터키 지역인 소아시아 내륙을 여행한 뒤 예루살렘에 가서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두 번째 선교 여행은 소아시아를 거쳐 고대 그리스를 방문하는 여정이었고, 세 번째 선교 여행은 이전에 복음을 전했던 지역들을 다시 방문한 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누가가 강조하려는 여러 주제가 반복되는 것을 발견한다.

 

첫째, 이스라엘을 위한 사역이 계속된다. 바울은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유대인 회당에 가서 부활하신 왕 예수님이 어떻게 모든 민족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을 세워 가시는지를 전한다. 그러면 대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지만 일부는 그를 반박한다. 심지어 바울이 토라와 유대 전통을 거스르는 위험한 반역자라며 성 밖으로 내쫓기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갈등은 첫 번째 선교 여행 이후 예루살렘에서 중요한 회의가 열리는 계기가 된다. 바울은 안디옥에 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일부가 이방인들이 할례와 안식일, 그리고 유대 음식법인 코셔를 지킴으로써 먼저 유대인이 되지 않으면 예수님의 가족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에 강력히 반대했고, 결국 이 논쟁은 예루살렘 지도자 회의로 가져가게 된다. 이 회의에서 베드로와 바울,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성경 말씀과 자신들의 경험을 들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이방인들을 그분의 언약 백성으로 삼을 계획을 가지고 계셨음을 상기시킨다. 

회의 결과 그들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우상 제사와 관련된 일에 참여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내지만, 민족적으로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거나 토라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이 결정은 예수 운동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메시아이시지만 동시에 모든 민족의 부활하신 왕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분의 백성이 되는 조건은 민족적 정체성이나 토라의 율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 운동은 명실상부한 다민족 운동이 되어 간다. 

 

이어지는 내용 역시 누가가 선교 여행을 통해 보여주려는 주제 가운데 하나로,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로마 세계 사이에 일어난 문화적 충돌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빌립보와 아덴(아테네), 에베소에서 일어난 여러 충돌을 기록한다. 

바울은 예수님이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온 세상의 왕이시고, 모든 이방 신들과 우상들이 무력하고 헛된 것임을 드러내시는 분이라고 선포한다. 이 때문에 그의 설교는 로마의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일쑤였고, 그는 위험한 사회 혁명가라는 혐의를 받기도 했다.

 

로마인들의 문화적 인식 틀로는 유일신을 믿는 다민족 공동체인 그리스도인들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고대 사회에서 그런 공동체는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의혹에 그치지 않았다. 누가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또 다른 주제는 바울과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로마 황제에 대한 반란이나 반역죄로 고소를 당했는가 하는 점이다.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분명히 들었다. 그는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선포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이 로마 문화의 가치에 대한 도전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았다. 그러나 로마 관리들이 바울을 붙잡아 신문해 보아도 어떠한 실제 위협도 찾을 수 없었고, 그는 매번 풀려난다. 

 

세상의 빛인 초기 교회의 역설적인 모습이 이 이야기들 속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유대 메시아 운동에서 시작했지만 다민족 공동체가 되었고, 남성과 여성, 부자와 가난한 사람, 노예와 자유인이 모두 동등하게 대우받았다. 그리고 왕이신 예수님 외에는 어떤 신이나 왕에게도 충성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존재 자체가 로마 문화의 핵심 가치들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그들이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예수께서 평화의 길을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바울과 그리스도인들을 고소할 수 있는 죄목이 있다면, 당시 사회 질서에 순응하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단락은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전해지는 바울의 증언에 다시 초점을 맞춘다. 바울이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그에 대한 여러 소문이 퍼져 있었다. 바울이 이스라엘을 배반했다고 믿는 유대인들이 그를 공격했고, 이를 본 로마 군인들은 그가 이집트에서 온 반란 지도자인 줄 알고 그를 체포한다. 

그 후 바울은 여러 재판을 받는다. 먼저 산헤드린 공회에서 유대 지도자들 앞에 서게 되고, 이어 가이사랴에서 로마 관리들 앞에 서게 된다. 펠릭스 총독은 후임에게 사건을 넘겨버리고, 후임인 베스도 총독은 결국 그를 아그립바 왕 앞에 세운다. 결국 바울은 수년 동안 감옥에 갇히게 된다. 

 

어떤 재판에서도 그의 유죄는 입증되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단지 부활에 대한 소망이 왕이신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다고 선포한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 법 체계상 이 시점에서 그를 쉽게 풀어 줄 수 없었기에, 바울은 로마 최고 법정에 항소하게 된다. 이 투옥 기간은 바울에게 선교의 걸림돌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성령은 모든 상황을 선하게 사용하신다. 바울은 이 기간 동안 그의 가장 중요한 서신들을 기록할 수 있었고, 그 서신들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교회에 선교적 유산을 남기게 된다. 

 

마침내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압송된다. 지중해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험한 항해를 마치고 로마에 도착한 그는 가택 연금 상태로 재판을 기다린다. 그 덕분에 그는 집에 머물면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초대해 정기적인 모임을 열 수 있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바울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쳤다.” 그것도 로마 황제의 바로 눈앞에서 말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하나의 이야기이다. 이 두 책은 단지 예수님과 초기 교회의 역사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도 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교회가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게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가는 또한 왕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어떤 모습인지 많은 예를 통해 보여 준다. 그것은 부활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과 행동으로 전하는 삶이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를 세워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왕이신 예수님께 충성하며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앞서서 이끄시는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신뢰함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이 전하는 이야기이다. 

 

사도행전의 초점

사도행전을 보면 처음에는 베드로가 중심 인물로 등장하고, 중간부터는 바울이 중심이 된다. 베드로는 12장 이후 거의 등장하지 않고, 15장에서 잠깐 나오고 사라진다. 바울의 마지막도 분명하게 끝나지 않는다. 사도행전의 핵심은 베드로와 바울 이야기가 아니다. “복음이 어떻게 퍼져 가는가.” 복음은 멈추지 않는다. 사람은 바뀌지만 사역은 계속되고, 성령이 계속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드로는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바울의 재판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로마 사람들은 복음을 들었는지에 우리의 관심이 있지만 성경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그 다음은 누구인가?”이다.

사도행전은 28장에서 끝나지만 사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신다. 베드로 다음 사람, 바울 다음 사람, 복음을 이어서 전할 사람, 사도행전 29장을 써 내려갈 사람을. “사도행전은 끝난 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이어 써야 할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