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펼쳐지는 은혜의 시대 - 마 9:14~26

  • 디모데준
  • 2016-01-26
  • 719 회
  • 5 건
15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모든 것,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슬퍼할 때, 기뻐할 때
일할 때, 쉴 때
배울 때, 성장할 때
말씀 묵상할 때, 기도할 때
잠잠히 기다릴 때, 과감히 순종할 때

지금의 "때"를 알고 분별하여
"때"에 맞게 행하는 지혜가 필요 한거같다
배움과 성장과 말씀묵상과 기도가 필요한 때 인거 같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바르게 성장할수 있는 내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20절: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절: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12년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
그 병으로 인해 동네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던 여인
12년동안 병을 고치려 수많은 의사를 만나고 수많은 약을 먹음에도 
불구하고 병은 치료 되질 않았다
더이상 소망이 없는 삶이였다, 절망의 삶이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남으로 12년동안 앓던 병이 단번에 다 나았다
육적으로, 사회적으로 치유를 받았다
치료받고 난후, 동네로 돌아가서 
주님께서 내 병을 치료 해줬어요! 라며 간증하며 살았겠지 라는 상상도 해보게 되었다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시는 주님이심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또한 이런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되었다
    • 느헤미야강 16-01-26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오늘 하루도 포근함을 느낍니다.
      모든 것,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말씀이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알기위해, 기다림의 끝에서 함께 기뻐할 수 있도록
      더 말씀의 사람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 Coramdeo 16-01-26
      디모데준님의 말씀처럼 모든것에는 때가 있는것같습니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때인가 생각해보게됩니다
      먹고 사는문제  또 자녀들의 미래떄문에 내일일을 걱정하며 뼈를 말리며 사는때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영적인 직분을 잘 감당하여 영혼을 세워나가기위해 날마다 무릍을 꿇고 말씀앞에서  먼저 나를 세워나가야할떄인것 같습니다
      나의 성경지식으로는 영혼을 세울수없으며 오로지 나의 삶을 통하여서만 상대방 에게 도전을 줄수있을터....사도바울이 말씀하셨던 내가그리스도를 본받는자가  된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는  말을 우리가 감히 할수있다면 ......
      그리고 지극히 개념을 중요시 하는 나에게 느헤미야강님의 말씀이 저를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교회에 슬리펴를 신고오거나 모자를 쓰고 예배를 드리면 속으로 아무리 믿음이 없다할지라도 어떻게 교회에 저런모습으로 오며 예배를 드릴수있을까라고 생각하며 그사람에 대해서 일단 좋은 평가를 하지않았습니다
      우리의구원에 영향을 주지않는 일이라면 모든것을 그냥 너그럽게  이해해주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사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자들을 볼때 안타까움때문에 이것 저것을 하도록 강요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조금은 인내함으로 기다려주는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나의 강요로 되지않는것을 알면서도 자꾸 .....
      가장 필요한것은  역시나 주님의 마음을 담아 기도하며 성령님께서 일하시도록 잠잠히 기다리는것
    • 느헤미야강 16-01-26
      20160125(월) 마태복음9;14-26

      마9;14-17절 말씀 묵상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 말씀을 누가복음 평행구절을 함께 읽으면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 말씀이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9;17)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눅5;39)

      한 때 이 말씀을 묵상할때마다
      묵은 포도주, 낡은 가죽부대는 버려야 할 것으로,
      새 포도주, 새 부대는 취해야 할 것으로 이해했다.
      새로운 가치관이나 새로운 개념을 옛날의 낡은 틀 속에 가둘 수 없다. 구시대의 낡은 그릇을 버리고 새것을 담아야 한다.
      그렇게 말이다.

      그러다가 눅5;39절 말씀을 읽다가
      그 의미가 아님을 깨닫곤 깜짝 놀란적이 있었다.

      이 말씀은 4복음서에 다 나온다.
      금식과 관련해서 나온다.
      금식은 율법을 의미하고 종교적 열심을 의미한다.
      이런 열심을 지키는 것은 예수 복음이 임하기전까지만
      효력이 있는 낡은 가죽 부대로 본다.
      그래서 예수님의 새 복음이 도래한 뒤부터는
      율법에 매여 있는 유대교에서 탈피하여
      복음의 새 그릇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읽었다.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는 예수님의 복음이요,
      낡은 옷과 낡은 가죽부대는 버려야 할 율법적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본문을 묵상하는 가운데 담긴 참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 성경의 의도는 둘 다 보전하려는 것이었다.
      와우~, 이것을 깨닫고 한참을 소리치며 고함을 질렀던적이 있었다.
       
      17절,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결코 낡은 것을 부정적인 의미나 버려야 할 것으로 말씀하지 않았다.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눅5;39)

      그렇게 생각하니까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도주도 오래될수록 좋다.
      새 포도주는 맛이 없고 더 오래 숙성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보면 새 포도주가 당시 성도들에게
      더 좋게 비쳐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눅5;39절이 깨달음의 비밀이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다”
       
      종합해보면 생베조각과 새 포도주는 새롭고 좋은 가치관이 아니라
      미숙하고 어설픈 어떤 것을 상징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여기까지 묵상하고 나서 천천히 더 읽어갔다.

      본문 말씀은
      낡은 것과 낡은 가죽부대는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오히려 낡은 것을 걱정하고 계셨다.
      그렇다고 생베조각과 새 포도주를 염려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두 가지 다 염려하고 계시다.

      그리고 앞의 성경구절을 읽어보니
      마9;11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냐’고 했다.
      예수님께서 마태를 부르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음식을 먹으면서
      친구로 지내시는 예수님을 못 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공동체는 부유층들만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까지이다.
      그러한 대화가 오간 후에 14절 말씀이 나온다.

      이때에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한다.
      14절,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님과 제자들은 세속적인 향락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율법에 능하고 성숙한 이라고 하면
      금욕적인 생활과 신앙적인 성숙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 것이다.

      이 말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금식할 때가 올 것이라고 하신다.
      이 말의 뉘앙스에는 예수님은 마태와 세리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지만
      이들은 아직 초보신자고 보고 계신 것이 아닌가 싶다.
      이들을 향해 금욕적인(금식) 생활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신 것 아닐까?

      세리와 죄인들을 너희들과 같은 성숙하고 노숙한 신앙인으로 보지 말라.
      너희처럼 거룩하게 살라고 너무 앞서서 강조하지 말라.
      그러면 그들도 괴롭고 또 신앙이 오래된 너희도 갈등과 분열에 빠질 수 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그들을 담을 만한 그들 수준의 틀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점점 성숙해져 간다.

      그렇게 읽고나자 드는 생각이 있다.
      혹 내 속에 그런 편견과 이해가 있지는 않은지...

      평생 입에 욕설을 붙이고 살던 사람,
      평생 고스톱치고 춤추러 다니던 사람,
      팽생 술 담배에 머리는 울긋불긋 염색을 한 사람,
      입과 코에 피어싱을 하던 사람,
      그 외의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교회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는
      그들의 개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들을 전통이라는 잣대로만 평가한다면
      교회에 젊은이들은 발을 들여 놓기가 어렵겠구나.

      에구구~!
      회개할 마음이 무척 많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 젊은이들만 그럴까?
      신앙생활을 오래 한 성도들에게서도,
      믿음이 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서도
      이런 잣대는 너무나 많이 보게 된다.
      쉽게 정죄하고 쉽게 판단하며
      쉽게 제하여 버리려는 마음이 보일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이 말씀이 나를 더 살피게 한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더 감사로 와 닿는다.

      그런 의미에서 생베조각과 새 포도는
      새로운 가치관이나 사상이 아니라
      이제 막 믿음의 길을 걷기 시작한 세리와 죄인들에 대한
      비유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성숙해야 하지만 아직은 미완성인 초신자들이다.

      반면 낡은 옷과 낡은 가죽 부대는
      세례요한의 제자들처럼 오래된 성도,
      신앙의 전통과 관습과 경건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 아닐까?

      예수님은 이 두 종류의 신자들이 모두 다 중요한 존재였다.
      대립되지를 원치 않으셨다.
      둘 다 버리게 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도 초신자나, 기존 오래 믿음생활 하신 분들이나
      미숙하고 부족함 많은 분들이나
      나무랄 데 없이 성숙한 분들이나
      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다가설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이
      더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이 예수님의 마음이 같이 세워질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 느헤미야강 16-01-26
      묵상순서가 디모데준, 느헤미야강, 느헤미야강, 코람데오님 순서인데
      느헤미야강 두번째 묵상에 오타가 있어 삭제후 다시 올리는 순간에 코람데오님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코람데오님의 묵산나문중에 느헤미야강의 이야기가 그렇게 언급되었습니다. 착오없으시기를 바랍니다.
    • 로뎀나무아래서 16-01-28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시는 주님....
      그 주님이 내 안에도 계심이 너무 감사합니다.

      주님의 그 은혜로 오늘 하루도 힘차게 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