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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4;1-10 말씀으로 채워진 사람,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 다니엘
- 2016-10-20
- 634 회
- 1 건
호세아는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리 특별한 소명을 받았다.
선지자의 중요한 역할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고,
범죄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며,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하는 일이다.
선지자들은 소명을 받은 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고
권력자들이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하였다.
이에반해 호세아는
하나님의 기획에 따라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범죄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소위 퍼포먼스,
즉 행위연출을 하였다.
그 내용이 호세아 1장에서 3장까지이다.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는 것이
호세아의 첫 번째 사명이었다.
물론 그것이 호세아 선지자의 궁극적인 사명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힘들고도 특별한 사명이었다.
결혼은 자신의 가치관에 입각하여
최적의 배우자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 상식이다.
아무리 돈과 학벌과 외모를 중시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할지라도
만약 결혼할 상대자가 음란한 사람이라면 쉽지 않을 것이다.
기도많이 하는 사람에게
기도중에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음란한 사람과 결혼해서 그 배우자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통로 역할을 하라는 응답을 받았다면
나 역시 제대로 응답하지 못할 것 같다.
음란한 여자와 결혼,
음란한 자식의 출산,
그리고 음란한 아내의 음행과 외도와 가출에도
그녀에 대한 용서,
가정회복을 위한 노력이라는 일련의 삶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데 충실했다.
중요한 점은 호세아 선지자의 이 슬픈 행위연출은
오늘날 행해지는 행위연출처럼 허구가 아니라
실제적인 진실한 삶이었기에 호세아 선지자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지점이다.
호세아 4장부터는
더 이상의 결혼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범죄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설교내용이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백성들의 범죄 사실 선언과 저주이다.
설교자가 저주를 선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가 강단에서 오늘 본문과 같은 설교를 한다면 그 반응이 어떻게 될까?
호세아 선지자는 하기 어려운 설교를 하였지만
그의 설교에 힘이 있는 것은
그 이전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의 충실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란한 여자는 모범적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정상적인 삶의 기회를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음란함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남편을 떠났다.
이스라엘이 이와 같았다는 말씀이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성품인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었다(1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하나님의 성품과 진실과 인애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성품이 사라지면
인간은 내재되어 있는 죄성이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성품을 상실한 인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 사회는 타인에게 욕설과 악담의 저주가 있으며,
거짓말과 사기의 속임이 있으며,
살인이 있으며,
도둑질이 있으며,
외도와 음란한 행위의 간음이 있다.
진실과 인애가 없는 인간에게는 이해와 용서가 없기에
포악해져서 보복에 보복,
원수가 원수를 낳는 ‘피가 피를 뒤이음’만 있을 뿐이다.
백성들만 범죄한 것이 아니었다.
4절에 선지자들이 넘어졌고 제사장의 타락도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지 않고
바른 제사가 없으니 소망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씀을 바르게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했다.
성경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지 않고는
결코 바른 삶을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 때에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다.
하나님 말씀앞에 매 순간 마음과 삶을 비추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동행하는 삶만이
진정한 하나님 자녀로서의 삶을 사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제목처럼
말씀으로 채워진 사람,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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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강 16-10-21
- 키에르케고르의 날지 못하는 거위 이야기가 생각난다.
거위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집회를 갖는다. 지도자 거위가 앞에 나가서 동료들을 북돋는 연설을 한다.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하늘을 날 수 있는 자들입니다. 보십시오, 우리에겐 날개가 있습니다.
이것이 그 증거입니다. 독수리처럼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 다니는 거위가 됩시다."
그리고는 연설한 거위부터 하나씩 모두 뒤뚱거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지도자 자신이 '지식'이 없다.
지도자 자신이 진실도, 사랑도, 하나님을 경외함도 없다.
지도자 자신이 돈과 연합하고, 우상에 빠져 있다.
지도자 자신이 날지 못한다.
공허한 말들만이 날아다닌다.
그러니 어찌 백성이 진실과 사랑과 하나님 경외를 맛보고, 누릴 수 있겠는가?
왜 하나님과 말씀에 분명해야하는지 알게 하신다.
부끄럽지 않는 목회자로 사는 것이
먼저는 바르게 알고
바르게 사는 것이라 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