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시 4;1-8 곡식이 풍성한 것보다 더 큰 기쁨과 평안
- 다니엘
- 20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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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
"주님, 우리에게 큰 복을 내려 주십시오."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며 불평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의 환한 얼굴을 우리에게 비춰 주십시오.(표준새번역)
2014년도부터 지금까지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면
이런저런 불안함과 고단함들이 있었지만
마음한편에는 늘 놀라운 은혜를 주실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무엇이 은혜였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교인들이 많아셔서 크게 부흥되었나?
그것은 아니다.
아픔도 눈물도 제법 많았던 나날들이었다.
그러면서 몇가지 양육과정을 하면서,
혹은 성도님들을 만나면서 주신 확신은
사람이 변화되어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1년전만 해도 그러지 않았는데
누가 변화되었다.
내가 변화되었다.
자신의 고백이든 타인의 고백이든지
언제나
가장 감사한 것은
사람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듣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3절,
알아두어라, 야훼께서는 경건한 자를 각별히 사랑하시니,
내가 부르짖으면 언제나 들어주신다.(공동번역)
다윗은 자신이 경건한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자신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이 싫다.
거부감이 먼저 든다.
만일 그렇다 해도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더 정스럽다.
나는 내 자신이 의롭고 경건하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다윗을 볼때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이유와 목적이 그것에 있음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요즈음 나라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위기의 때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죄가 심각해서 멸망하였다기 보다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하였다고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경건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한 나라나 지역, 공동체를 구원하는 통로가 된다.
다윗도 경건할 수 없는 상황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경건의 자리에 서기를 기뻐했던 것 같다.
2절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요즈음 우리나라가 시끄럽다.
많이 시끄럽다.
그것 뿐만아니다.
현재 음란사이트 접속율 세계 1위,
청소년 음주 흡연율 세계 1위,
이혼율 1위,
자살률 1위,
낙태율 1위,
교통사고 발생율 1위,
성형수술율 1위 등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
얽매이기 쉬운 모든 죄에 심각하게 빠져있다.
문제는 여기에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싸움, 세상 사람만 그런가?
욕심, 세상 사람만 그런가?
거짓말, 세상 사람만 그런가?
음란, 세상 사람만 그런가?
나라가 이 정도의 위기 상황이 되었는데도
내가 여전히 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함을 깨닫는다.
내가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그에게 잘못한 일을 했다면
즉시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라고 말한다.
반면에 혼자 있으면 누구에게 잘못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다면
당연히 예수님께 잘못했다고 해야 한다.
나의 경건의 삶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고
마땅히 잘 못된 삶이 큼에도 불구하고
회개없이 산다는 것은
나에게 회개할 대상이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수 믿으면서도
회개할 대상이 없다는 것은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아니거나
헛되게 믿는것의 다름아니다.
매일 매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누군가의 선언처럼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
내 언어로 경건의 삶을 산다는 것은
실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어렵다.
솔직히 이것이 어려운 것은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던 일들이 불편해지고
어떻게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재미없는 삶처럼 여겨져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이것은
그동안 내가 진정으로 마음에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았음을 증명해주는 것임을 알았다.
어쩌면 내가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세상가치나 욕심
그러한 삶에서 맛보던 순간적인 기쁨을 끊으려 하는 것이
처음에 힘들게 여겨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잘못된 식습관을 가진 사람이
건강 때문에 식습관을 바꾸려 할 때
처음에 어려움을 겪는 것과 같은 것 같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만 한 걸까?
만약 평생 힘들다,
어렵다,
부담된다 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진정한 기쁨을 맛보게 되면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된 것임을 확신한다.
7-8절,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맛보고 나면
어떤 것을 통해서 누리는 기쁨보다
어떤 풍성함보다
평안하고 안전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발견하게 하심에 감사하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믿고
믿은바 기대대로 살게되면
반드시 변화된 삶을 살게 될 수 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다윗처런 나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임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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